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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작가가 3일 서울 삼청동에서 개인전 '호흡ㅡ선혜원'을 선보인다./포도뮤지엄 |
이번 전시는 회화, 바느질, 설치, 퍼포먼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집과 정체성, 인류 보편의 문제를 사유해 온 김수자 작가(68)의 10년 만에 서울서 여는 개인전으로, 그의 작품이 한국 전통 한옥 건물에 설치되는 첫 사례다. 전시에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 '호흡—선혜원'(2025)을 비롯해 총 4개 작품, 11점이 출품된다. 선혜원 전역에 설치되는 작품들은 전시의 맥락을 확장하며 관람객에게 명상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김수자의 '호흡' 연작이 한국의 전통 한옥 건축물에 설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경흥각이라는 장소와의 결합이 지니는 상징성도 크다. 작가는 '호흡'이라는 제목처럼, 한옥 고유의 정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미묘하게 떨리는 빛과 공기의 흐름을 포착하며, 관람객의 호흡과 발걸음까지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호흡—선혜원(2025)'은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으로, 전통 한옥 경흥각을 예술작품으로 전환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이다. 바닥 전체를 거울로 마감해 건축물과 빛, 관객의 모습을 반사시키고, 구조와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몰입형 공간으로 구성된다. 고요한 숨과 명상이 어우러진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 존재와 공간이 교차하는 감각을 제시하며, 고정된 건축물조차 유동하는 존재로 탈바꿈시킨다.
로비에는 '연역적 오브제—보따리(2023)'가 설치된다. 이 작품은 조선백자의 상징인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독일 마이센 도자기(Staatliche Porzellan-Manufaktur Meissen)와 협업해 제작됐다. 보따리를 연상케 하는 외형에서 바늘구멍을 제외한 어두운 내부 공간은 존재와 정체성을 환기시키며, 논리적 개념이 형태로 귀결되는 '연역적 사고'를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반구형에 가까운 두 그릇이 정교하게 맞춰진 비대칭 형태는 보름달 전후의 천체를 연상시킨다.
'연역적 오브제—보따리'와 마주한 '땅에 바느질하기: 보이지 않는 바늘, 보이지 않는 실'(2023)은 같은 재료로 제작된 평면 작품으로, 앞선 입체 작품의 펼쳐진 형태로 해석된다. 작가는 마르지 않은 백자토에 바늘로 수많은 구멍을 뚫어 다양한 빛의 리듬과 방향을 제시하며, 불규칙한 질감의 표면에 행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바늘은 2차원 평면을 관통하는 물리적 수단이자 자아와 타인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지하 1층 삼청원에는 '보따리(2022)'가 설치된다. 이 작품은 김수자의 대표 연작 중 하나로, 이동과 정체성, 기억에 대한 시적 탐구를 담고 있다. 전통 생활 도구였던 보따리를 조각적, 개념적 예술 매체로 전환한 이 작품은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상징이자, 물질적·비물질적 삶의 흔적을 담는 이동식 보금자리로 재정의된다.
김수자 작가는 "1990년대 양동마을에서 '보따리' 작업을 시작한 이후, 줄곧 전통 건축 속에서 새로운 설치를 꿈꿔왔다"며 "선혜원의 독특한 전통 건축 양식을 감싸며 펼쳐지는 거울 바닥 작업을 선보이게 돼 기쁘다. 해외에서만 이어오던 거울의 오랜 여정을 이제 한국의 관객들과 나눌 수 있어 더욱 뜻깊다"고 전했다.
선혜원은 1968년 SK그룹 창업주의 사저로 시작돼 인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으며, 2025년 4월 기업 연구소이자 컨벤션 공간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SK는 선혜원의 역사성과 공간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선혜원 아트 프로젝트'를 출범했고, 김수자 개인전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기획으로 제주 포도뮤지엄이 주관을 맡았다. 향후 다양한 큐레이터와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는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진행되는 지역 행사 '삼청나잇'과 연계된다. 포도뮤지엄은 4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선혜원을 특별 개방해 관람객이 한옥의 야경과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전시는 10월 19일까지 계속되며, 관람은 네이버에서 '선혜원'을 검색해 사전 예약하면 무료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