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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트럼프의 미국에는 인류애, 그리고 사랑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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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0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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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논설심의실장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어느 새벽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이뤄 서울 도심 경복궁 옆으로 갔다. 먼동이 트기 전이라 제법 어두컴컴했다. 친구들과 인도에 줄지어 늘어섰다. 재잘거리면서 왜 이렇게 일찍 오라고 했을까 궁금해 했다. 경광등을 번쩍거리면서 숱한 검정색 승용차들이 앞을 지났다. 그때 어디선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마구 흔들어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미 포드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귀국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궁금증은 해소됐다.

어린 기억으로 미국은 큰 나라였고 힘이 센 나라였다. 그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된 미국은 존재 그 자체로 세계 최고 강대국이었다. 달러화 기축 통화를 바탕으로 그 어느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나라로 우뚝 솟았다. 군사력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에 천문학적 원조를 하는 그런 나라로 각인됐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대한민국의 학교들이 양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미군에게 초콜릿을 받아 먹던 그 모습은 사진 속에서 여전히 영롱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을 접하고 있다. 트럼프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를 목도하고 있다. 대통령이 자국을 위대하게 한다는 데 반대할 미국인은 없다. 국부를 늘리는 데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을 마다할 국민은 더더욱 없다. 트럼프는 지금 자국 국부 창출을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른바 '관세 전쟁'을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국들의 미국 내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미국에 투자된 공장 등 실물은 미국의 국부로 편입되기 마련이다. 높은 관세를 피해 수출 경쟁력을 갖추려면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약소국의 한계다.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은 존재감을 잃게 됐다.

우리의 경우 35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미국에 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삼성전자, 한화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앞을 다퉈 미국 투자를 발표하고 나섰다. 우리뿐만 아니라 주요국 모두가 숨을 죽여 가며 미국의 의도에 순종하고 있다. "과연 트럼프다"라는 말이 나돈다. 부동산 재벌가에서 태어난 트럼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가 기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그의 곁에는 재산이 수조원에 달하는 장관들이 늘어서 마가의 실현을 돕고 있다.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는 대통령과 장관이 공직을 수행하고 있다. 사업가들의 눈에는 사업만 보일 뿐인가 보다.

그러더니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요충지를 러시아에 이양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6·25 동란 이후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갈라놓은 것처럼 지금 미국과 러시아는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놓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흥정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국민은 요즘 관세 전쟁과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국내 기업의 위축, 수출 급감 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에 투자를 집중하면 국내 산업의 공동화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돼 있다는 우려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서 수출 위주의 우리 경제 체질이 극도로 허약해 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이제 미국은 이제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어려운 나라들을 껴안고 도움을 주는 나라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나라로 행동하고 있는 듯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세상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약소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자기 나라를 잘 살게 하겠다는 리더십이라면 국민의 지지와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미국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그걸 알기에 트럼프는 지금 미국을 더 부강하게 하려고 부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와중에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 근로자들을 무더기로 강제 연행해 구금시설에 가두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발생했다.

트럼프의 이런 행보를 보면서 "미국이 이렇게 막 가도 되나" 하는 불안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2기 행정부를 이끄는 트럼프가 저 멀리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국을 찾아 먹을 것과 마실 게 없어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이나 빈곤층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안타깝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남달리 봉사활동에 애를 쓴 카터 전 대통령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이러다가는 미국이 자국 욕심만 챙기는 매우 이기적인 국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마가를 향해 너무 과속하는 듯하다. 과속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적절한 시기에 생겨나지 않으면 미국이 달러화 지폐에 새겨진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는 대신 '돈을 믿는다(In Money We Trust)'라는 글귀를 새기게 될 날이 그리 머지않을까 싶다. '아름다운' 미국은 세계 최강 국가로 여전히 인류애와 사랑, 배려, 박애, 희생, 구호, 원조 등의 마음을 품고 있는 나라이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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