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률 OECD 평균 감축 목표
산업안전분야 근로감독관 대폭 확충
'노동안전 관계 장관회의' 신설·개최
임금체불 '중대한 경제범죄'로 규정
집행력 강화·사회적 대화 병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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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한국노총-고용노동부 장관 간담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 |
이 대통령은 포스코그룹의 잇단 사망 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고, 산재 사망사고가 난 SPC 제빵공장을 찾아 장시간 노동과 안전 실태를 직접 점검했다. 국무회의에선 "산재가 줄지 않으면 직을 걸라"는 발언으로 김영훈 고용노동부(노동부) 장관에게 고강도 책임을 부여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을 1만명당 0.39명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29명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 분야 근로감독관을 내년까지 1300명가량으로 대폭 확충하고, 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차관급으로 격상해 정부 대응을 강화한다. 안전 관련 경영공시 강화, 금융제재 확대 등 '반복 산재 사업장'에 대한 실질적 제재 카드도 예고했다. 여기에 이달 '노동안전 관계 장관회의'를 신설·개최하며 범정부 원팀 체계를 가동했고, 산재 근절 방안을 묶은 '노동안전 종합대책'도 이달 발표를 목표로 막바지 조율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실효성은 결국 기업의 태도 변화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제도가 갖춰져도 기업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산재공화국' 오명을 못 벗는다"며 "산업안전 투자를 게을리하는 기업이 이득을 보는 관행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체불 문제도 전면에 올렸다. 정부는 범부처 '임금체불 근절 대책'을 내고, 명단공개 대상을 '3년 내 2회 이상 유죄'에서 '1회 이상'으로 확대하고 법정형을 '징역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상향하는 방안을 담았다. 임기 내 체불액을 2조원대에서 절반 수준인 1조원으로 줄이고, 청산율을 95%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위해 체불금 회수 전담센터 설치와 국세 수준의 강제징수 절차 도입까지 검토 중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노동계의 숙원을 풀었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넓히고 하청·비정규 노동자의 교섭권을 제도화해 '수십 년 지연된 과제'를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포 후 6개월의 유예를 거쳐 2026년 3월 10일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헌법상 권리 실현의 출발점이라며 환영했지만, 재계는 경영권 침해와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추진 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입법은 비가역적 성격을 갖는데,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입법부터 하고 나중에 고치자'는 접근은 위험하다"며 "노사 양측의 의견을 반영한 정교한 매뉴얼과 합의 기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산재와 임금체불 같은 노동현장의 문제뿐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까지 손보겠다는 구상을 드러내면서 노동정책의 큰 방향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는 원청·정규직 중심의 기득권 구조를 넘어 취약계층 노동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강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다만 이 대통령의 노동정책이 현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집행력 강화와 사회적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노동 현실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정부가 산재, 임금체불, 이중구조 해소를 겨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이해당사자들의 불만과 우려를 대화로 조율하지 않으면 정책 추진력이 오래가기 어렵다. 동시에 여론과 정치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집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