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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두렵기만 했던 S&P·무디스 또 등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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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14. 17:47

이경욱 실장님-웹용
이경욱 논설심의실장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의 재정적자 규모가 확대되면 이들 신용평가사는 자동적으로 국가 재정 건전성을 들여다본다. 우리의 지금 상황으로 미뤄볼 때 국가신용평가 등급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 고위 경제관료 출신으로 현직 금융인이 현 정부의 재정 운용과 관련, 제기한 우려다. 신용평가사들은 특정국의 재정 적자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만성적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면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나서게 된다고 걱정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무디스 같은 단어를 친숙하게 접하지 못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향해 추락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을 때 등장한 단어가 바로 S&P, 무디스, 그리고 피치IBCA였다. 세 곳 모두 국제신용평가사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이 동남아발 외환위기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이들의 동선(動線)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들 신용평가사가 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일이다. 당시 재정경제원(지금의 기획재정부)을 취재했던 필자는 매일 국제금융시장 동향을 살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국가신용 상태를 알 수 있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도 일일 점검 대상이 됐다. 이들 신용평가사 동향이 경제 향방을 쥐고 있을 때였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났고 구제금융도 상환을 마무리했고 외환보유고도 남부럽지 않게 확보한 요즘 이들 신용평사가는 우리의 시선과 관심에서 비켜서 있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확장 재정 추세가 확연해지면서 이들의 움직임이 신속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비쿠폰 등 국가 경쟁력 강화에 직접 도움이 안 되는 쪽으로 재정 투입을 되풀이하면 할수록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결국 국가신인도 하향 조정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 대두되고 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야 돈이 필요하면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 된다. 그러나 우리같은 비(非)기축통화국은 원화를 무분별하게 발행하게 되면 재정 건전성 훼손으로 이어져 국가신인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원화는 달러·엔·유로 등 주요 통화보다 발행력과 수요가 뒤지기 마련이다. 국제결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통화당국이 원화를 마구 찍어내면 원화 가치는 폭락하고 국가신용등급은 추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획재정부는 '2025~2065년 장기재정전망'에서 206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156.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행 제도와 정책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올해(49.1%)의 세 배를 넘는 수준이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지출 확대와 성장 둔화가 겹치면서 재정이 장기적으로 악화할 것이란 게 정부의 판단이다.

올해의 경우 소비쿠폰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국채 발행이 크게 늘었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이번 전망에서 제시된 것보다 국가 채무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채 발행 증가는 곧 조달비용 확대를 의미한다. 늘어난 이자 부담은 재정지출을 더 압박하게 되고 국채금리 상승은 시중금리를 끌어올려 가계와 기업의 차입 비용을 늘린다. 이는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성장 잠재력 자체를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국제금융시장의 눈길도 곱지 않을 것이다.

때마침 정부는 조직개편을 통해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예산처)와 재정경제부(재경부)로 쪼개 예산처를 국무총리 소속 장관급 기구로 두고 각 부처 예산안 편성과 배분, 국회 심의 대응, 집행 관리, 정부 기금 운용, 재정 건전성 확보, 국가발전전략 수립을 담당하도록 했다. 앞으로는 국무총리실의 시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배분하게 된다. 재정 건전성 확보의 몫은 총리가 갖게 된다.

확장 재정에 경계심을 갖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기재부의 목소리는 이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앞서 언급한 금융인은 "우리 경제는 지금 중병에 걸렸다. 환자에게 수술 등 근본적 치료를 하는 대신 진통제, 영양제만 자꾸 처방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술 등 근원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수준까지 올라간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S&P 등 신용평가사들의 이름을 자주 접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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