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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이트] ‘노란봉투법’ 사람을 지키는 법인가, 없애는 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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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9. 21. 17:54

배태준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교수
배태준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교수
2025년 8월 24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일요일 본회의에서 단 한 건의 법안이 통과됐다. 바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다. 하청·플랫폼 노동자에게까지 교섭권을 보장하고,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법안 통과 직후 월요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로봇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국장 (국내 주식)을 하려면 노란봉투법과 로봇을 연결할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노동자 보호를 내세운 법이 오히려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의 수혜로 직결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노란봉투법, 노동현장에서 사람을 지키는 법인가, 없애는 법인가?"

이 법안은 기어코 9월 2일 국무회의에서도 의결되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노란봉투법이 스타트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로봇·AI·자동화 관련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 같다. 기업들은 노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사람 대신 기술을 빠르게 도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급등기에 키오스크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전례처럼 노란봉투법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AI·로봇 도입 시장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시각에서 한국은 '자동화 실험장'이 된 셈이다. 특히 제조업, 물류, 서비스업에서 반복적 업무를 대체하는 로봇 솔루션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며, 해외 투자자들은 자동화와 로봇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실험해 테스트해 볼 것이다.

반대로 '사람을 쓰는' 스타트업에는 노란봉투법이 족쇄가 된다. 고용을 많이 하는 모델은 투자자들에게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외면받을 것이다. 프리랜서 등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 기업 또한 단순 중개자가 아닌 사용자로 간주돼, 노동 분쟁에 휘말릴 리스크가 커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와 같은 노동 의존형 스타트업도 앞으로 투자 매력을 급속하게 잃게 될 전망이다. 인건비 부담과 법적 책임이 겹치면, 기존 사업 모델 자체를 접거나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벤처·스타트업은 국가적 위기마다 고용의 완충 역할을 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인력을 인터넷·콘텐츠 벤처가 흡수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긱(Gig) 플랫폼이 청년·비정규직의 고용 충격을 덜어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이후에는 스타트업이 그런 역할을 하기 어렵다. 사람을 고용하는 순간 리스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투자와 자본은 '사람을 줄이는 기술'로만 몰리게 생겼다.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가 결과적으로 전체 일자리 총량을 줄이는 역설로 귀결될 수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장기적으로 고용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양적 축소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보완책을 서둘러야 한다. 전환 교육과 재훈련, 고용 인센티브 제공, 노무 리스크 보증,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험 편입, 그리고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신산업과 스타트업의 특수성을 감안한 유연한 규제 설계도 요구된다. 단기적으로는 고용 충격을 완화하는 안전망이, 장기적으로는 기술과 사람의 조화를 이루는 제도적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란봉투법은 '사람을 지키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없애는 법'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배태준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교수

※배태준 한양대 교수는…
한양대 경영학부 졸업. 미국 루이빌대학교 기업가정신 박사. 박사 취득 후, 미국 호프스트라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로 근무, 현재 한양대 산업융합학부, 일반대학원 창업융합학과 주임교수 재직. 한국경영인학회 편집위원장, 기업가정신학회 편집위원. 주요 연구분야는 창업자 행동, 실패 후 재도전 기업 행동. 다수의 논문과 '앙트러프러너십 개론'(2022), 'K-스타트업, 실패가 알려주는 성공의 길'(2024),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과거, 현재, 미래'(2025) 등의 공저 집필.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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