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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우리가 바라는 ‘생산적 금융’…실효로 이어지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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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섭 기자

승인 : 2025. 09. 21. 18:04

임우섭 기자
요즘 금융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생산적 금융'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고,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취임사에서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 용어는 아직 국민에게는 추상적으로만 들린다. '생산적'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금융은 본래 자금을 효율적으로 중개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 금융은 지난 수십 년간 이자 마진에 치중한 대출에 치우쳐 왔다. 은행은 부동산 담보를 잡고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손쉽게 수익을 냈고, 그 결과 부동산 쏠림과 가계부채 누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심화됐다. 생산적 금융은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산업·미래 성장동력으로 돈이 흐르도록 금융의 역할을 재정립하겠다는 데 본질이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생산적 금융을 제도화하기 위한 세 가지 해법을 내놓았다. 우선 은행·보험 자본규제를 손질해 자금이 부동산보다 기업투자로 흘러가도록 조정했다. 내년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에는 더 높은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고, 주식·펀드의 위험가중치는 낮추는 방식이다. 올해 12월에는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반도체·인공지능(AI)·2차전지 등 10개 미래전략산업에 5년간 자금을 공급한다. 여기에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토큰증권(STO) 같은 제도를 도입해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모험자본이 더 원활히 공급되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했다.

그러나 제도 설계와 숫자 조정만으로는 생산적 금융이 자리를 잡기는 어렵다. 어떤 기업을 골라 어떻게 자금을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국민성장펀드를 두고 "누가 고르고,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렇듯 무조건 자금을 푸는 게 아닌, 옥석을 가려낼 안목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금융권 스스로의 변화다. 단순히 제도에 따라 돈을 집행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어디에 자금을 투입할 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나온 금융권 스스로의 반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국민적 비난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사실 선구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신용평가 방식과 산업분석 능력을 개척해 선구안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생산적 금융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금융권이 내부적으로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확충하고, 성장기업을 발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의 제도 설계는 틀을 마련할 뿐, 실제로 돈이 투입되는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금융회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생산적 금융은 숫자 놀음이나 단순 선언이 아니다. 기업과 국민이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고, 미래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임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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