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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대통령실은 미국이 우리 대미투자 금액 3500억 달러(약 493조 5000억원)에 대해 현금 투자를 압박하자 "관세협상 데드라인은 없다"며 배수진을 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과도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것을 확정한 데다, 내달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석이 거의 확실시됨에 따라 모처럼 찾아온 '외교대목'과 맞물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7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한미관세협상과 관련해 "하나의 목표 지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차기 정상회담 계기일 것"이라며 "APEC 때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이 한미관세협상 타결 목표 시점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APEC이 내달 31일부터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가량 협상 조율 시간이 남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미국의 외환시장 주무장관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만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한 우리 입장을 피력한 것 역시 협상의 고삐를 당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베센트 장관에게 "한국은 경제 규모, 외환, 시장 및 인프라 등 측면에서 일본과는 크게 다르다. 이런 측면도 고려해 협상이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베센트 장관이 "이 대통령의 말씀을 충분히 경청했고, 내부적으로도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밝힌 만큼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과 베센트 장관의 만남이 한미 관세협상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는 관세협상을 위한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측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조현 외교부 장관은 물론이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방미 계기에 베센트 장관을 만나 우리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협상이 순탄치 않다는 분위기는 여전히 곳곳에서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액에 대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하며 관련 액수가 관세 인하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위 실장은 "3500억달러를 현금으로 낼 수는 없다"며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라고 선을 그었다.
또 위실장은 베선트 장관과 이 대통령의 만남과 관련해 "(관세) 협상에 진전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며 "협상장이 아니었고 단지 우리의 입장을 좀 더 명확하고 비중 있게 전달하는 자리였기에, (앞으로의) 협상에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한미관세협상과 관련해 "국익을 최우선의 전제로 두고 계속 진행하는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