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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배임죄 폐지, 꼼꼼한 대체 입법 전제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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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0. 01. 00:01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TF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병화 기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30일 경제형벌 규정 합리화 당정 협의를 열고 형법상 배임죄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과도한 경제형벌은 기업뿐 아니라 자영업자 소상공인까지 옥죄어 왔고, 대표적인 사례가 배임죄"라며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최대 징역 10년 또는 벌금 3000만원에 처하도록 한 규정(형법 제355조 2항)이다.

문제는 범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적용범위가 넓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행위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는 물론, 문제가 되는 '임무 위배 행위'라는 구절도 너무 추상적이어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법무부가 최근 5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의 1심 판결문과 약식명령 3300건을 분석한 결과 임직원의 회사 자금 사적 사용, 납품 대금 과다 책정, 영업비밀 유출 등 기업 영역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부동산 이중매매나 종중의 무단 토지 매도 같은 민사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배임죄가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70년 이상 유지된 배임죄를 갑자기 폐지할 경우 처벌의 공백과 배임죄와 유사하나 재물을 객체로 하는 횡령죄와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폐지'보다는 형법 355조2항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배임죄를 전면적으로 폐지하자는 폐지론과 배임죄 구성요건을 엄격히 재해석해 제한적으로 운용하면 된다는 존치론이 맞서왔다.

어떻든 당정이 배임죄 폐지로 방향을 잡았다면 존치론자들이 주장해 온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특히 배임죄가 국민들 사이에서 '사인(私人) 간 거래에서 신의성실을 명시한 규정'으로 인식돼 있는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배임죄가 갑자기 폐지되면 생각보다 일상생활에서 많은 혼란과 혼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입법 마련이 배임죄 폐지 결정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런 점을 당정도 인지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는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되, 구성 요건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를 축소한 대체입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일반법인 형법의 규정을 삭제할 경우 이 허점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법안을 건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현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배임죄 폐지에 부정적인 데는 그 많은 법률을 고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한몫하고 있다. 당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계와 법조계·기업·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형법상 배임죄를 대신할 입법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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