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대주교, 다른 관구 수석주교보다 명예상 우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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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3일(현지시간)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후임으로 사라 멀랠리(63) 런던 주교를 지명했다.
여성 지도자가 영국 국교회를 이끄는 건 1534년 헨리 8세 국왕이 로마 교회와 결별하는 수장령을 선포하고 성공회의 시초를 마련한 이후 처음이다.
대한성공회는 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영국 성공회가 사라 멀랠리 런던 주교를 제106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출한 것에 대해 "성공회 공동체의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성공회는 여성 지도자가 영국 국교회를 이끌게 된 것이 "영국 성공회 약 1500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캔터베리 대주교직에 오르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하고서 "이번 역사적 선출이 성공회 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논평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평등과 리더십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라며 "멀랠리 대주교의 리더십을 위해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성공회에 따르면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이자 일치의 상징이며 라틴어로는 '동등자 중 제일인자'(primus inter pares)로 불린다. 전 세계 약 34개 자치 관구의 수석주교 중에서 명예상 우선권을 갖는다. 하지만 다른 관구에 대해 법적이나 행정적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대한성공회는 1993년 독립 관구가 된 이후 완전한 자치권을 행사하는 성공회 공동체의 정식 구성원이며 캔터베리 대주교와는 동등한 교제와 일치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2년 사제로 서품받은 멀랠리는 2018년 사상 첫 런던 주교로 임명된 바 있다. 런던 주교는 영국 성공회 서열 5위 자리다.
간호사 출신인 멀랠리는 1999년부터 잉글랜드 지역 최고간호책임자(CNO)로 일하다가 2004년 그만두고 사목에 전념했다.
2003년 임명된 웰비 전 대주교는 교회 관련 활동을 하던 변호사의 수십 년간 아동 성학대 의혹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에 작년 11월 사임했다. 조너선 에번스 전 영국 보안국(MI5) 국장이 위원장을 맡은 왕실추천위원회(CNC)는 웰비 사임 이후 1년 가까이 후임자를 검증해 멀랠리를 찰스 3세에게 추천했다.
멀랠리는 이날 "생존자들의 목소리의 계속 귀기울이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며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문화를 만드는 게 대주교로서 나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멀랠리는 동성 커플 결혼에 대한 교회의 축복을 지지하는 등 진보적 견해를 밝혀 왔다. 로이터는 그가 전임자들처럼 동성애 등 교회 내 쟁점에서 보수파와 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일을 두고 보수 성향 단체인 세계성공회미래회의(GAFCON)는 이날 "영국 교회가 지도 권한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새 캔터베리 대주교의 공식 취임은 법적 절차인 선출 확인(Confirmation of Election) 의식을 거친 후, 2026년 3월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승좌식(Enthronement/Installation)이 거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