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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세운 것은 모두 두 차례다. 그 처음은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다. 1977년 북한과 근접거리 서울에 대한 안보 문제와 수도권 과밀화 해소 등을 이유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이 수립됐다. 충남 공주군 장기면 일대가 임시 행정수도로 검토되는 등 구체화됐지만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중단됐다. 수십 년 앞을 내다본 박 전 대통령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두 번째는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선되자마자 바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후보지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헌법재판소가 가로막아 섰다. 2004년 10월 헌재는 특별조치법에 대해 '관습법상 수도가 서울'이라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재판관들은 명시적 성문헌법 국가에서 뜬금없이 관습헌법이라는 새로운 법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살고 있던' 수도 서울을 장렬히 '사수'했다. 당시에도 사법 적극주의를 앞세운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난이 많았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행정기능을 분산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현 세종시)'로 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중부권에 대도시 하나 만든 꼴로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인구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 발전 등을 추구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권력과 돈, 인력을 골고루 나누고자 했던 행정수도 시도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외국의 경우 행정수도는 물론 수도 이전까지 해가며 미래를 위한 국가 발전 전략을 짜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미 전 세계 여러 국가가 과밀 해소, 낙후 지역 개발, 행정 효율성 증대, 안보, 연구 등 다양한 이유로 수도 이전과 행정수도 건설을 단행해 왔다. 브라질과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은 수도를 이전했으며, 호주, 말레이시아, 이집트 등은 행정수도를 건설했거나 건설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률은 50%를 넘고 있다. 국토 면적의 약 12%에 불과한 공간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 일본, 영국보다도 수도권 집중도가 큰 편이다. 유럽에서는 수도권 인구 비율이 10%만 넘으면 고위험 신호로 본다.
수도권 집중은 필연적으로 주택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급할 땅이 없는데 바글바글한 인구가 뒤엉켜 좋은 곳, 즉 똘똘한 한 채 잡기에 몰두하는 현상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결국 쏟아지는 부동산 대책은 국가 전체에 대한 대책이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 대책일 뿐이다. 지방에는 부동산 문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소멸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뿐이다. 국토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부동산 정책'이 필요한데도, 그때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약효가 얼마 가지 못하는 미봉책인 '단기적 대책'이 남발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4개월 만에 세 번째인 이번 10·15 부동산 대책도 그렇다. 규제 지역 및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 지정하고, 규제 지역 내 15억원 초과 주택 주담대 한도 제한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금 부자들을 위한 대책이라는 게 즉각적인 반응이다. 집값 상승에 대한 원인 규명도 없이 단편적인 규제강화 내용만 담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도, 전세도 막아버리는 꼴이 됐다. 대책이 나오자마자 후속 보완책 얘기가 나온다. 전가의 보도처럼 세금 얘기를 꺼낸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 "너네 정권 탓"이라고 으르렁댄다. 강남권에 집을 가진 수두룩 국회의원들이 속으로는 웃으면서 겉으로는 서민행세를 하는 가식적 행태일 뿐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나오자마자 다시 보완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런 대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사는지. 집 한 채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서민들의 심정은 아는지. 대책을 만들면서 서민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반영하기는 하는지. 인구소멸로 죽어가는 지방의 부동산 관계자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 봤는지, 정말로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과열을 잡고 싶은 생각은 있는지 등등… 어떤 사안이든 대책의 남발은 그 과제가 고질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일시적·단기적인 대책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백년대계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것도 적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그 피해는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50년 전, 20년 전 국토의 균형 발전과 사회 통합,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이라는 더 큰 가치를 추구했던 정책이 무산되고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를 반추해 봐야 할 것이다. 대책은 그만하면 됐고 이젠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범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