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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역에 출몰 중인 이른바 '어번 베어(urban bear)'는 단순히 먹이를 찾아 내려온 산짐승이 아니라, 사라진 인간의 경계가 남긴 자리를 채운 존재다. 접근을 막을 숲은 베어졌고, 지켜야 할 마을은 텅 비었다.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곰이 내려온 게 아니라 인간이 물러난 사회가 곰을 불러들였다는 것이 보다 근본적 진단이다.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에서는 불곰이 학교 운동장을 활보했다. 미야기현에선 투표소 앞에서 곰이 포착되어 참의원 선거가 일시 중단됐다. 이와테현 모리오카에선 81세 여성이 자택 내로 침투한 곰 때문에 사망했다. 도심 침투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붕괴의 상징이다. 곰은 '침입자'가 아니라, 인간이 비워둔 공간을 정복한 새로운 거주자가 된 셈이다.
곰 출몰 급증의 근저에는 복합적인 인간 사회의 실패가 있다. 첫째는 지방 소멸이다. 농촌 고령화로 경작지가 폐허가 되면서, 사람과 곰의 완충지대였던 '사토야마(里山)'가 소멸했다. 일본의 한 생태학자는 "인간이 사라진 농촌이 곰의 새로운 서식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둘째로 사냥 인구 감소와 정책 부재를 꼽고 있다. 일본의 수렵 면허자는 1990년 대비 80% 줄었다. 생태학자들은 "곰을 제압하던 인간의 영역이 비어 있자, 곰이 스스로 경계를 재설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후 변화와 먹이 불균형을 들 수 있다. 도토리 열매의 흉작과 가뭄이 겹치며 곰의 생존 전략은 '산을 버리고 도시로 향한다'로 바뀌었다. 일본산림총합연구소 보고서는 "올여름 이상고온으로 산림 곤충과 열매의 주기가 깨졌다"고 밝혔다.
결국 이 모든 요인은 인간 시스템의 붕괴가 낳은 결과다. 곰이 인간을 침범한 게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의 경계를 해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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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의 또 다른 투영은 '거울로서의 곰'이다. 곰이 점령한 것은 산이 아니라 도시 그 자체다. 니가타현에서는 곰이 쇼핑몰 주차장을 뛰어다녔고, 홋카이도에서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영상이 일상 뉴스가 됐다. 곰이 내려온 자리는 곧 버려진 공장, 폐가, 노인만 남은 마을이다. 이 공간들은 일본 사회의 해체된 공동체를 상징한다. 한 생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곰은 일본 사회의 그림자다. 곰의 눈으로 본 도시는 더 이상 인간의 도시가 아니다."
흥미로운 건, 곰은 그 자신이 달라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곰은 여전히 계절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본능을 따라 먹이를 찾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것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통제하던 영역의 틀이 사라지자, 곰은 단지 그 빈자리를 채운 존재가 됐다는 지적이다. 곰은 악당이 아니라 변화의 징후이며, 붕괴한 사회구조를 반영하는 생태적 거울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환경재난의 사회학적 모델'로 평가하고 있다. 환경성과 사회적 관리체계의 붕괴, 생태 경계의 소멸을 한 번에 드러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인공지능 드론 감시망을 전국 산림에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계가 자연을 감시하는 사회야말로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게 된 증거"라고 꼬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