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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매출은 217억 원을 기록했다. 단청 키보드, 전통 갓 모양 볼펜이 해외로 역직구되며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은 어둡다. 중국 온라인 몰에는 우리 기념품을 흉내 낸 상품들이 'K팝 캐릭터'라는 이름으로 넘쳐난다. 외관은 비슷하지만 품질은 조악하고, 한글 대신 한자가 새겨진 키보드가 유통된다. 진위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 해외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고, 브랜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지난 7월 중국 플랫폼이 선보인 요리 프로그램은 '흑백요리사'를 그대로 베꼈다. 백 명의 요리사가 등급별로 겨루는 포맷, 무대 디자인, 촬영 기법까지 판박이였다. 거액이 들어간 기획을 저작권료 없이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윤식당', '쇼미더머니', '환승연애'도 비슷한 제목으로 둔갑해 중국에서 방영됐다. 해외 불법 사이트를 통한 침해 신고 건수는 3년 새 87% 가까이 급증했다. 작년 한 해에만 37만 건이 넘는 삭제 요청이 접수됐다. 하지만 실제로 조치된 경우는 33% 수준에 그쳤다. '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같은 화제작들이 불법으로 유통되는 동안 제작진은 속수무책이다.
문제는 대응 시스템의 공백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인 제조사들이 지역마다 다른 중국 법원에 소송을 걸고 불확실한 판결을 기다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저작권 침해 대응 예산은 8억 원 남짓이다. 사고가 터지면 소송비 일부를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특허 분야는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와 분쟁 예방 시스템을 갖췄는데, 저작권은 이처럼 홀대받고 있다.
국회에서는 저작권 침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모조품 방치는 있을 수 없으며 보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행이 필요하다. 문체부·외교부·법무부 등이 합동 대응팀을 꾸려 개별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국제 분쟁에 나서야 한다. 중국 내 선제적 권리 등록을 돕고 분쟁 발생 시 법률·소송 비용을 전면 지원해야 한다. 외교 채널을 통해 모방 콘텐츠에 대한 제재와 실질적 배상이 이뤄지도록 압박해야 한다.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권리 관리를 체계화하는 전문 인력 제도를 확산시키고, 중소 제작사를 위한 교육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K-콘텐츠는 이제 국가 브랜드이자 성장 동력이다. 세계인이 우리 전통문화에 열광하고, 우리 작품을 소비하며, 한국 상품을 찾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성과가 도용과 불법 유통으로 잠식된다면 창작 의욕은 꺾이고, 투자는 위축되며, 생태계는 무너질 것이다. 문화 강국은 콘텐츠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는 나라다. 이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K-콘텐츠를 지켜야 할 때다. 저작권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K-콘텐츠의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