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손정의 등 인사와 골프회동
민간 외교관으로 존재감 다시 부각
美·日·EU와 반도체·AI 협력 확대
삼성 글로벌 투자, 韓 산업 새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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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올 들어 공식적으로만 최소 7차례 이상 해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한국의 날' 행사에 참석해 한일 경제 협력 복원에 힘을 보탰고, 현지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반도체·소재 분야의 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7월에는 미국 아이다오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글로벌 미디어·테크 기업 CEO들과 교류했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개최해 온 국제 비즈니스 회의로 글로벌 미디어·IT 업계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교 모임으로도 유명하다. 이 회장의 해당 행사 참석은 7년 만으로, 업계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이달에도 19일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해 글로벌 IT·투자업계 인사들이 함께했고 반도체·AI 산업 협력과 한미 기업 간 투자 환경 등이 폭넓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말에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에 참석해 각국 정상 및 글로벌 기업 리더들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
이 회장의 민간 외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더욱 빛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직후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하고 그간 설계 중심이던 미국 반도체 산업 구조를 제조·공정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이에 삼성·인텔·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급격히 확대됐다.
삼성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텍사스 테일러 지역에 약 37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대규모 반도체 단지를 건설 중이다. 이곳에는 최첨단 로직 팹과 R&D 센터가 함께 들어서며 미국의 반도체 산업 재편 전략과 궤를 같이하는 대표적 현지 투자 사례로 꼽힌다. 삼성 입장에서도 단순한 국가 협력이 아닌 AI 등 차세대 반도체 수요를 겨냥한 사업적 판단에 가깝다는 평가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재계 총수들이 국가 행사나 경제외교에 참여해 온 것은 오랜 전통"이라며 "정주영 회장의 88올림픽 유치 사례처럼, 이재용 회장 역시 국가적 과제에 민간 네트워크를 더하는 레거시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회장의 행보를 단순히 외교 제스처로만 볼 수 없다"며 "대미 투자·공급망 협력 등은 사업적 연관성이 충분하고, 삼성의 글로벌 역량을 발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 회장의 '민간 외교'는 특정 정권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번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한미 기술동맹과 AI 인프라 협력 등에서 민간 채널로서의 역할이 한층 강화됐다. 특히 삼성은 최근 오픈AI·테슬라 등 글로벌 AI 생태계의 핵심 기업들과 연이어 협업을 발표하며 차세대 기술 협력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달에는 오픈AI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는데,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향후 초대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등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 구상과 방향을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황용식 교수는 "'스타게이트'와 같은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관련 생태계에 기여하는 것은 한국의 AI 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 회장의 외교 활동은 해외 투자뿐 아니라 국내 데이터센터, AI 생태계 확장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앞으로 국가 통상·산업 외교의 한 축으로서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