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시설 법적기준 없어 사실상 방치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사 15명 이르러
'교육기관' 예외로 산안법 적용 사각
전문가 "제도적 보호 범위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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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노동은 '하루 세 시간 단순 조리'라는 인식과 달리 고강도 중노동이다. 식재료 검수와 손질, 수백 인분의 조리, 배식과 설거지, 청소까지 하루 6~7시간을 서서 보낸다. 끓는 국솥과 튀김기 앞에서 열기를 견디며 일하다 보면 손목과 허리가 뻐근하고 기관지는 타들어간다. 점심이 끝나도 급식실 청소로 손이 쉴 틈이 없다. A씨는 "조리 중 한 번 기침이 나오면 멈추질 않는다"며 "숨 쉬는 것조차 일인 날이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작업환경이다. 환기가 되지 않아 조리실 안은 늘 고온다습하고, 기름 연기와 미세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갇혀 있다. 배식대 근처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는다. 작업복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름과 땀에 절고, 마스크를 벗으면 목이 따갑다. A씨는 "후드가 소리를 내도 공기가 나가지 않는다"며 "몇 년째 바꿔달라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한승현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은 "노동부가 전문가들과 함께 환기시설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며 "시설을 개선하려면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하는데, 교육부는 예산 문제를 이유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적 기준이 없다 보니 사실상 방치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은 조리원들의 건강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장시간 서 있는 탓에 무릎과 허리 통증은 기본이고, 반복 작업으로 손목터널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도 많다. 고온의 기름 연기와 분진에 노출되면서 호흡기 질환, 심지어 폐암 진단을 받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충북 음성의 한 급식조리원 B씨가 폐암으로 숨졌다. 흡연 이력도 없었지만, 환기시설조차 없는 급식실에서 수년간 일해온 결과였다. 올해 9월엔 20년 넘게 급식노동자로 근무해 온 C씨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렇게 학교 급식실에서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원은 15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다. 튀김·볶음 조리 중 배출되는 미세입자에는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 독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교급식실은 일반 음식점보다 조리량이 많고, 환기 구조가 취약해 조리흄 노출 위험이 높다"며 "조리흄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의학적 근거가 명확한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도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법적으로 '고위험 작업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시행령과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기관은 일부 조항이 제외된다. 조리와 청소 등 현업 종사자는 예외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으나, 학교가 '교육기관'으로 분류되면서 급식실이 관리대상에서 빠지는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도 미세한 결절이나 초기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저선량 폐CT 검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 급식실 조리사들이 제도적으로 폐암 조기검진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6월까지 213명의 학교 급식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이 중 178명이 승인됐다. 사망자는 15명이다. 지역별로는 경기(60건), 서울(27건), 경남(19건)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이는 2021년 이후의 통계만 집계한 것으로, 이전 사례는 관리되지 않아 실제 피해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 근속 후 퇴직하거나 진단조차 받지 못한 '숨은 피해자'가 많다는 게 현장 증언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산업안전을 강조하지만 조리실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라며 "제도적 보호 범위를 넓혀야 비로소 '죽음의 급식실'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