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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이 ‘한일 경제연합’ 구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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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02. 17:44

감정과 이념 지배해온 한일관계 획기적 전환 필요
미래세대 위해 성장동력 살릴 경제블록 만들어야
김명호1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한일 경제연합 구상은 매우 현실적이고 미래적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주도적으로 제안한 이 구상을 빠르게 구체화하고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래 먹거리, 미래 시장 확보, 다음 세대의 활동 영역 확장을 위해서다.

최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과 감당할 수 없게 될 고비용의 감축, 규모의 경제를 노린 양국 경제력 시너지 효과 등을 위해 단순한 경제협력 아닌 EU(유럽연합)식 경제연합을 제안한다. 규모로는 6조 달러 시장의 세계 4위 경제블록 창출이요, 규칙 추종자에서 규칙 제정자(Rule-setter)로의 역할 전환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경제 연합을 구체화하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은 적지 않다. 한일 관계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너무 복잡하고 미묘하다. 중년층 이상은 '일제' 하면 품질과 기술에서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던 시절을 기억한다. 축구든 야구든 유도든 한일전이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일종의 적대감 의식이 감정 전반을 지배했었다. 일제 강점기는 지우고 싶은 역사다.

한일 관계를 보는 정서는 거의가 과거 시점의 관점이다. 지난 일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관점을 형성하며, 행동 방향을 결정한다. '친일'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정적 프레임이다. 한편으론 일본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던 시절, 그들의 선진 질서의식과 기술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양가적 감정이다.

한일관계는 경제교류 등 실제적이고 현실적 관계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럼에도 늘 국내 정치의 거대한 도구로 활용돼 왔다. 한일관계는 필요할 때마다 결정적으로 여론을 자극해 활용하기 좋은 재료다. 정책이든 선거든, 진보든 보수 정권이든 상관없이 활용해 왔다. 구체적 사례는 숱하게 많다. 시민단체가 동원되고, 최고위급 정치인들이나 정당 스피커들이 나서 여론을 과대하게 증폭시켜 정파적 이익을 거두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이용해 얻는 허망한 정파적 과실과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실용적 이익을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계량화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 문제는 값싼 여론에 기댄 정치다. 그래서 한일 경제연합은 정치적 관점에서부터 푸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비정치적 분야는 양국의 합리적 이익이 가는 쪽으로 흘러가게 돼있다. 반도체, 인공지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세계경제의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SCM)의 거대한 변화 등으로 친일, 반일 구호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정치가 이를 계속 활용하는 건 미래 세대의 튼튼한 밥줄 하나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냉전 시절,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은 1969년 이른바 동방정책을 발표한다. 동독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의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유럽 공산권과 교류, 대소 경제협력 추진 등을 단행했다. 동서독 교류가 활성화됐고 결과적으로 패전국에서 유럽 경제최강국으로 발돋움할 기틀을 마련했다. 역사적으로는 냉전 완화와 공산권 약화 및 유럽통합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물론 여론의 반대는 심했지만 미래 독일을 위한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경주 한일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격변하는 국제정세, 통상환경 속에서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8월 23일자 일본 주요 신문들과의 합동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의 무역, 투자, 교류 정도의 협력 수준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경제협력 관계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실용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잇는, 좀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일관계에 관한 공동의 선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대일 정서를 감정적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권과 여론의 공격을 반박, 설득할 자세를 더 적극적으로 갖춰야 한다. 한일 경제연합 구체화는 정파적 이익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본 문제만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단체가 광복회다.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광복회는 전쟁 전 일본을 비난하고 규탄하나 그런 적개심을 전후 일본에까지 연장시킬 의사가 없다.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은 구별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1998년 김-오부치 선언을 결심한 김 전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이 광복회장은 당시 국가정보원장으로서 일정 역할을 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렇게 직설한다. "이제는 수출만 잘한다고 성장이 안 된다. 그 모델은 수정돼야 한다." "수출 총액이 아니라 수출로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핵심이다." 지정학적 요인,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로 성과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뜻일 게다.

말이나 형식, 감정과 이념이 지배해 온 한일관계, 이 대통령이 한일 경제연합을 구체화함으로써 한 단계 높여야 한다. 그는 한일관계에 대해 "실용적 관점 필요"(6·4 총리 등 임명식) "미래지향적으로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10·31 페이스북) "다카이치 총리가 개별 정치인일 때하고 국가 경영을 총책임질 때의 생각과 행동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 저도 야당 지도자일 때하고 대통령일 때의 판단과 행동이 달라야 한다.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미래 한일관계의 좌표다. 이제 미래세대를 위해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한다.

김명호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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