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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작권 전환, 자존심 아닌 국가의 생존 걸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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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06. 13:42

주은식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안규백 장관은 4일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개최했다. SCM은 한미 국방당국 간 고위급 실무 회의인 '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언급된 주요 협력방안을 점검한 후 의결하는 협의체로 조건에 의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단순한 주권 문제나 지휘체계의 교체가 아니라 한미연합지휘체계의 근본구조를 변화시키고 한반도 방위체제의 핵심축을 재편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전작권 전환이 돼도 문제없다는 안이한 발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은 안보 위험을 높일 수 있는 만큼 매우 신중하게 다룰 사안이다.

◇ '전환'인가 '분리'인가-한미 합의문의 함정
2018년 한미가 체결한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지침(Guiding Principles Following the Transition of Wartime, OPCON)'은 언뜻 보면 한국군이 한미연합군 전체를 통제하는 '전환'을 약속한 듯 보인다. 그러나 김태우 박사가 분석했듯이 영문본은 '한국군에 대한 전작권의 전환(transition of OPCON of ROK forces)'으로 돼있어, 실제 의미는 미군을 포함한 연합군 전체의 작전권 이양이 아닌 '한국군 작전권의 분리(separation)'를 뜻한다.

한글본은 '독립적 상설기구'라는 표현으로 '미래연합사'를 강조했지만, 영문본에는 'separate standing entity'로 돼있어 상징적·형식적 조직임을 암시한다. 더구나 영문본에는 '4성 장군'이란 표현조차 없으며, 미국이 외국군에게 자국군 지휘권을 넘긴 전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 한 번도 없다. 이를 미군은 퍼싱 원칙이라 한다.

◇ 증원군사력의 붕괴-억제력의 실종
현재 한미연합사는 유사시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부로부터 증원군사력을 시차별로 투입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항모 전단, 전략폭격기, 미사일방어 자산이 자동적으로 한반도 전구에 전개되는 것은 미군4성 장군이 연합사령관으로 작전지휘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군으로 넘어가면, 이 자동 증원은 사라진다. 미군의 증원군 투입은 '협의사항'으로 전환되며, 미국 대통령과 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몇 시간 내 결심해야 할 화급한 위기상황이 수일 또는 수주로 지연될 수 있다.

그사이 북한은 핵·미사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하고 땅굴로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수도권을 마비시키고, 우리 군은 독자 방위에 고립될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이라는 구호가 억제력의 붕괴, 확장억제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미군 위상의 변화는 동맹의 균열 시작을 의미
전작권이 전환되면 주한미군의 위상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지금까지 미군은 '공동책임자'로서 전쟁 억제와 작전지휘를 동시에 담당했지만, 전환 이후에는 '협조세력'으로 후퇴한다. 이는 단순한 직급 문제를 넘어 정책결정 구조의 격하와 전략적 투자 우선순위의 이동을 의미한다.

미 의회와 국방부는 한반도를 더 이상 '1차 방위전구 (KTO)'로 보지 않을 수 있다. 일본·괌·필리핀 등으로 전략중심이 이동하면, 한미연합사령부는 상징적 기구로 전락하고 주한미군은 '보조기지'화될 위험에 직면한다. 이것은 곧 미군의 전력감축·전략자산 축소·철수 명분화로 이어진다. 미군이 빠져나간 한반도에서 우리는 '전작권 자주화'라는 미명 아래 고립된 자주방위의 허상을 마주하게 된다.

◇ '주권 회복'의 정치적 미망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군사주권 회복'으로 홍보하지만, 작전통제권은 본래 주권의 일부가 아니라 전시 임무수행을 위한 위임된 권한이다. 그것을 회수한다고 해서 자주국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자주가 아니라 무방비의 자주, 동맹 없는 고립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군이 대북 감시자산, 정보체계, 정밀타격능력, 사이버방어체계, 연합전력 통합까지 완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환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안보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국가적 모험이자 자살
전작권 문제는 '찬성'과 '반대'의 이념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김태우 박사의 지적처럼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전작권 전환 실상'을 바로 알고 바로 알리기다. 국민은 전작권이 '전환 (transition)'인지, '분리(separation)'인지, 환수(transfer)인지조차 모른 채 정치적 구호만 듣고 있다.

정부는 즉시 영문본과 국문본의 차이를 공개하고, 새 연합사령부의 실체 즉, 미군의 지휘권 범위, 증원군 투입 조건, 위기 시 지휘절차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 내부의 '완전 임무수행 가능 상태(FMC,Fully Mission Capable)'만 구비되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운명은 상징적 자존심이 아니라 실질적 억제력과 동맹의 신뢰 위에 세워진다. 지금 이 나라가 선택해야 할 것은 '자주'의 허상이 아니라 안보의 현실이다. 전작권 전환은 국가의 생존을 건 시험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작전권 전환이 전쟁억제의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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