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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런던엔 없지만 서울에는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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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기자

승인 : 2025. 11. 06. 06:21

BRITAIN ECONOMY <YONHAP NO-5643> (EPA)
2025년 10월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중심부에 있는 시티 오브 런던의 금융지구 거리를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EPA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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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약 900만명의 영국 런던은 서울과 닮았으면서 참 다르다. 국가의 수도인 두 도시는 인구 규모도 비슷하고 각각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 문화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메가시티다.

그런 런던에서 이른바 '후진국형 범죄'로 불리는 '스마트폰 스내치(날치기)' 사건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거리 한복판에서 하루에도 수백건의 휴대전화 절도가 속출한다. 작년에만 런던에서 약 8만대의 휴대전화가 도난된 것으로 집계됐다.

범죄자는 더 스마트해졌고 그만큼 그 수법은 더 교묘해졌다. 복면을 쓴 채 전기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리며 거리의 시민들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를 낚아채 간다.

통화 중이던 스마트폰도 범행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지인과 통화하던 시민은 한순간에 통화가 끝나버린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다.

서울에서는 이런 유형의 범죄가 싹이 마른 수준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발생한 소매치기는 2011년 2378건에서 2019년 535건으로 대폭 줄었다. 올해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가 발표한 통계에서도 절도가 줄고 있는 추세가 보였다.

왜 이렇게 다를까. 두 도시 모두 공공 방범용 CCTV만 수십만대를 운영할 정도로 치안에 진심이다.

다만 런던의 문제는 문화 지체에 있다고 본다. 기술, 도구 등 물질문화의 발전 속도를 법, 규범, 가치관 등 비물질 문화가 따라가지 못해 간극이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에 2010년대에 시행된 영국 경찰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과 유럽산 휴대전화를 불법으로 대량 구매하는 중국 암시장의 기승도 한몫했다.

런던 경찰청은 그동안 이런 유형의 범죄를 두고 이른바 좀도둑 개인의 돈벌이를 위한 소행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수년간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정보까지 접수하고도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히드로 공항 인근의 창고에서 도난 아이폰 약 1000대를 적발해 압수하면서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후 총기·마약 밀수 담당 수사관들이 투입됐고 4만대에 육박하는 도난 휴대전화를 중국으로 운반한 조직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30대 남성 2명을 체포했다.

이런 런던에서 상상도 못 할 광경이 서울에서는 흔하게 펼쳐진다. 가정집 현관 앞에 배달된 택배 상자가 쌓여 있어도 수령인이 아니면 누구도 손대지 않는다. 규범을 뛰어넘는 시민의식과 보이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형성한 신뢰망이 있다.

구성원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도시에서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살 만한 도시란 완벽한 시스템을 만든 곳이 아니라 완전한 신뢰의 문화가 만들어진 곳 아닐까.
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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