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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당은 지난 5월 민간 부문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결의안 68호'를 발표했다. 국가가 주도하되 민간 기업을 경제의 핵심 추진력으로 삼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가 챔피언'을 육성한다는 것이 골자다. 홍선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KOCHAM)의 명예회장은 베트남의 이 전략을 "한국의 재벌처럼 '칩부터 선박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기업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산당의 이 같은 정책 방향은 또 럼 공산당 서기장이 민간 기업의 인프라 건설 참여를 독려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인 빈그룹이 나서면서 현실화 됐다. 빈그룹이 700억 달러(101조 2620억 원) 규모의 북남 고속철도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열차까지 직접 제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는 빈그룹의 철도 관련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부동산을 핵심 사업으로 하고 있는 빈그룹이 내세운 자금 조달 계획도 정부가 토지 보상금을 전액 부담하고 사업비의 80%를 수십 년 만기의 무이자 대출로 지원해달라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로이터는 입수한 정부 내부 문건을 통해 베트남 핵심 경제 부처들이 해당 제안에 대해 극히 이례적으로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빈그룹의 높은 부채 비율(레버리지)와 철도 사업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해당 프로젝트가 "은행 시스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국가 보증을 필요로 한다"고 경고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재무부 역시 "0% 이자율은 사실상의 국가 보조금으로 베트남의 국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만기에만 부채를 상환하는 30년 상환 일정은 "매우 위험하다"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복수의 소식통들은 로이터에 이러한 내부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빈그룹의 입찰을 독려했고, 철도 노선을 따라 진행될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까지 했다고 전했다.
빈그룹에 대한 특혜 의혹은 고속철 사업뿐만이 아니다. 빈그룹의 입찰 2개월 뒤인 지난 7월, 하노이시는 2026년 중반부터 도심 내 내연기관 오토바이 운행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로 베트남 시장의 80%를 장악한 일본 혼다의 8~9월 판매량은 급감했다.
반면 이 조치의 최대 수혜자는 빈그룹의 전기 오토바이·자동차 자회사인 빈패스트였다. 빈패스트의 2분기 전기 오토바이 판매량은 1분기 대비 55%나 폭증했다.
이처럼 특정 대기업에 노골적으로 유리한 정책이 잇따라 나오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결의안 68호'가 발표된 이후 5개월간 베트남의 외국인 투자 유치액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으며 증시가 랠리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외국인 자금은 계속 유출되고 있다.신용평가사 피치의 윌리 타노토는 "성장을 위해 특정 기업 그룹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이들에게 신용을 집중시키는 것은 은행 대출 포트폴리오의 집중 위험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