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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동의 우리들의 주거복지] 모듈러주택 활성화 ‘철 지난 정책’ 될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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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12. 17:55

장용동
장용동 한국주거복지포럼 상임대표
두서너 달 전 지인으로부터 중국 대형업체의 모듈러(조립식) 주택 기술을 이양 받을 한국의 중견 주택건설업체를 추천해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이재명 정부가 조기 건축이 가능한 모듈러 주택 건설을 적극 활성화할 계획이니 중국업체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을 경우 향후 주택 사업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중국의 모듈러 주택 건설 기술을 적용하면 무엇보다 시공 원가가 낮은 데다 공기를 단축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정부가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물량 확보는 물론 자금 등 각종 지원 등으로 회사 경영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아울러 덧붙였다.

그로부터 2개월쯤 후인 지난 10일 정부의 모듈러 주택 활성화방안이 나왔다.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구조물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주택 공급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며 이른바 '탈현장건설(OSC) 모듈러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발표였다.

사실 정부는 지난 9·7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의 후속 조치로 이에 대한 검토 작업을 그동안 심도 있게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대 당면과제인 주택 조기 공급 확대 조치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 대안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건축 주요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완성하는 방식이어서 현장 중심의 전통적인 시공 방식보다 공사 기간을 20∼30% 단축할 수 있다. 그만큼 신속하게 주택 공급이 가능해진다.

또 현장 인력 투입이 줄어 안전사고 위험이 낮고 균일한 고품질 확보가 가능한 것도 큰 장점이다. 공장 자동화 설비를 통해 숙련인력 부족이나 고령화 등 건설 현장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기도 하다. 건설 현장에 만연한 안전사고나 부실시공 문제가 바로 제3국의 미숙련 인력이 시공 현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조기 도입 시급성 또한 이해가 간다. 특별법 제정과 설계 및 감리, 품질 관리 등의 법적 기준을 서둘러 마련하고 불합리한 규제 해소는 물론 활성화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 방안도 대책에 포함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 삼성, GS, 롯데 등 대형 건설사들이 공업화 주택 특허와 인증을 서둘러 취득하는 등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듈러 주택의 특장점과 달리 해결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자칫 난관에 봉착하는 어설픈 시도에 그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지난 1989년 수도권 1기 신도시 건설 당시의 주택시장 및 환경은 현재와 매우 비슷했다. 88올림픽을 거친 터라 유동성이 차고 넘쳤고 베이비붐 세대들의 내 집 마련 의욕이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자고 나면 주택가격이 수천만 원씩 뛰어오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심지어 주택가격 상승 등으로 자살하는 사태까지 빚어지자 당시 노태우 정부는 서둘러 200만호 주택건설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수도권에 분당을 비롯해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지의 5개 신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인력 부족과 함께 조기 건설의 필요성을 고려해 정부는 조립식 주택건설계획을 발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고 주택건설업체들은 너도나도 조립식 패널 공장을 지어대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충북 음성의 싼 땅까지 경쟁적으로 매입, 수십 개의 PC 패널 공장이 들어섰고 드디어 1991년 분당 신도시에 조립식 주택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주도 채 되기 전에 패널 틈새가 벌어지고 고강도에 따른 소음, 부실시공 문제가 터졌고 이로 인해 조립식 주택은 부실의 대명사가 되고 수요자들로부터 완전 외면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분당 시범단지 조립식 주택은 그 여파가 강하게 미쳐 여전히 가격 등에서 불이익이 크다. 이로 인해 음성 PC 단지는 무덤이 되고 완전 조립식은 사라졌다. 지금까지 부분 조립식이 간간이 맥을 이어오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과거와 달리 부실시공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정교한 기술이 도입, 새롭고 다양한 고품질의 모듈러 주택 건설이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현장의 제3국 인력들의 낮은 숙련도와 작업환경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부실 여지가 없지 않다. 또 공사비가 철근콘크리트 방식보다 약 30% 비싼 것도 문제다. 대량 발주로 건설 원가를 낮출 수 있을 것이나 당분간 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연 재건축 아파트를 모듈러로 짓는데 동의하는 조합원이 얼마나 될까. 국민소득 4만 달러 수준에서의 새 주택만을 고집하는 우리의 주택 니즈 패턴을 참작하면 대량, 속성으로 짓는 모듈화에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는 주택이 넘쳐나 빈집이 속출하는 상황이며 미래 수요는 개성에 맞는 소량 다품종 주택을 원할 게 분명하다. 매입 임대 등 공공임대 주택에서의 모듈러 활용은 신속하게 신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자칫 "서민은 저급주택에 살라는 얘기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수요층의 니즈를 보다 철저히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장용동 한국주거복지포럼 상임대표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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