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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극단의 시대, 문명의 병리인가 선악의 대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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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16. 15:49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62회>
송재윤1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 문명과 불만족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눌러앉아 살게 된 지구인들은 수천 년 만에 커다란 도시를 이루고 문명을 일으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지구인들은 수백만 년의 세월 먹잇감을 사냥하고 채집하며 살아왔다. 그랬던 지구인들이 어떻게 불과 1만년에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을까?

종(種, species)의 진화 과정에선 1만년쯤은 한 찰나에 지나지 않지만, 특정 조건 아래서 유전적 변형(genetic modification)이 일어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다. 인류가 늑대를 사육하여 개를 길러낸 역사는 1만년 정도다. 늑대와 개는 외양이나 성격 면에서 서로 다른 종만큼이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유전학적으로 개는 늑대의 아종(亞種, sub-species)일 뿐이다. 늑대와 개는 상호 교배하여 생식능력을 갖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늑대를 사육해 개를 만들어냈듯 농경을 시작한 인류는 수천 년의 짧은 세월 동안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거듭났을 수 있다. 농경 이후 사회의 울타리에 갇힌 인류는 덜 공격적이고, 더 순종적이며, 더 정교하게 사유하고 표현하는 문명인으로 개조됐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문명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문명인의 유전자가 발현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세대를 거듭하다 보면 사회적 협동, 자발적 순응, 감정 조절 등등의 형질은 크게 드러나고, 문명에 부적합한 형질은 억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많은 인류학자는 문명 속의 지구인이 유전자 변형(genetic modification)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생물 인류학자 랭힘(Richard Wrangham)은 지구인의 문명화 과정을 유전적 유순화(genetic pacification)라 설명한다. 늑대가 유전적 변형을 거쳐 개로 탈바꿈했듯 지구인 역시 농경에 진입하면서 대규모 집단생활에 적합한 성격으로 뒤바뀌었다는 학설이다.

고대든 현대든 모든 문명사회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일탈자, 사회적 규약에 엇나가는 이탈자, 게으르고 방탕한 부랑아, 분기탱천한 반항아 등은 주변으로 밀어내고, 격리하고, 감금하고, 심지어 처형하는 경찰 체제와 형벌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덕분에 문명에 적응한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고 다그치는 삼엄한 감시자의 시선을 갖고 다닌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1930년 '문명과 불만족'이란 제목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한 후 그는 원시 상태에서 모두가 누렸던 태고의 자유를 상실한 문명인들이 느끼는 여러 형태의 불만족이 집단적인 광란의 폭력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계몽주의적 합리성이 인간의 삶에서 만성적 불만족을 일으켜 결국 집단 히스테리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돌이켜보면, 프로이트의 정신병리학적 문명론은 인류가 곧 직면할 2차 세계대전에 관한 묵시론적 예언과도 같았다. 문명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결국 자기 파괴적인 폭력의 악순환에 빠지고 만 셈이었다.

◇ 20세기, "극단의 시대"

산업화 이후 지구인의 일상은 무한 경쟁과 극단 투쟁의 연속이었다. 특히 20세기 초엽부턴 과학기술의 발전은 대규모 살상 무기를 사용하여 수백만,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가는 기계화된 현대전(mechanized modern warfare)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산업화 이전에도 수많은 전쟁이 벌어졌으며, 그 모든 전쟁은 하나하나 잔인하고 체계적인 살상전의 양상을 보였다. 전근대 전쟁이 아무리 잔인하고 참혹하다 해도 현대전에 비하면 기껏해야 소규모였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신었던 부츠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신었던 부츠들.
비근한 일례만 들면, 19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자행된 유대인 집단 학살(pogrom)의 피해자는 수십 명 정도에 그쳤다. 2차 대전 히틀러 치하 독일 제3 라이히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600만명을 넘어섰다. 수십 명에 가해지던 19세기적 집단 린치가 수백만 명을 조직적으로 제거하는 20세기적 인종청소의 광기로 터져 나왔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사망자는 1600만명, 부상자는 2100만, 실종자와 수감자는 700만~800만명을 헤아렸다. 그 수치는 12년 끌었던 나폴레옹 전쟁(1803~1815)의 사상자(350~500만 정도)보다 대여섯 배를 웃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20년 만에 인류는 더 큰 규모의 세계대전에 돌입했다. 1937년 일본제국의 중국 침략에서 시작된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7000만~8000만명에 달했다. 1차 세계대전보다 네댓 배나 높은 수치였다.

랭힘의 주장대로 인류가 문명화 과정에서 유전적 유순화를 거쳤다 해도 그 과정에서 인류는 본능을 억누르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통찰대로 억눌린 문명인의 집단 히스테리가 아니라면, 이성의 힘을 신뢰하고 합리적 사유를 강조하는 계몽(啓蒙, Enlightenment)의 시대에 그토록 처참한 대량 살상과 종족 멸절의 광기를 표출할 수 있었을까?

◇ 정치적 양극화, 지구인의 본성은?

세계는 지금 정치적 양극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고, 어느 집단을 봐도 맹신과 광열이 넘쳐난다. 30여 년 전 구소련이 무너졌을 땐 반세기 냉전이 드디어 끝났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팽배했었으나 세계는 다시 좌우로 갈가리 찢겨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날마다 지구 여러 지역에선 크고 작은 군사 충돌과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세계 각국에선 시위, 소요, 암살, 방화 등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는 인공지능(AI)의 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공동 문제다. 사피엔스의 극단화 경향이 위태로운 사회·경제적 조건과 만나면 때론 인류의 멸망을 우려하게 하는 대규모의 잔인무도한 집단 학살로 표출돼 왔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존재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그리도 잔혹하고 어리석은 양상을 보일 수 있는가?

어떤 이는 알고리즘이 극한 대립의 원인이라며 정부를 향해 인터넷을 통제하라 주문한다. 어떤 이는 갈수록 격해지는 사회 분열과 세대 갈등은 소수 엘리트의 음모라며 대중의 궐기를 부르짖고 있다. 그런 주장은 일면 귀에 솔깃하지만, 과학적 분석이나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극단적 사유, 극악한 언행, 양극단의 무한 투쟁은 만물의 영장이라 칭송되는 사피엔스 고유의 본질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대략 6300종(種)의 포유류
중에서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조직적 제노사이드와 집단적 대량 학살을 자행해 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들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들.
외계인 미도가 말했다.

"지구인은 선과 악을 두루 갖춘 모순된 존재입니다. 깊은 사랑으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기도 하지만,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혀 대량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지요. 800만을 도살하라 명령했던 히틀러는 동물 학대를 끔찍이 싫어했던 채식주의자였다지요. 전 국민의 네 명 중 한 명을 제거했던 폴 포트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프랑스 역사를 가르쳤던 사람이고요. 18개월 감옥살이했던 스탈린은 남달리 침착한 모범수였다고 하더군요. 대체 그런 인간의 양면성을 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천사와 악마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마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건가요? 지금도 지구 도처서 벌어지는 정치적 양극화를 지켜볼 때마다 그런 물음이 듭니다."

진정 우리는 미도의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만 할까?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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