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편집된 진실, ‘삼양라면 1963’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17010008614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11. 17. 18:09

-부분적 진실의 선택과 의도된 편집은 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우지'라면 사건에서 보듯이 '거짓은 날아가지만,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20251102010000350_1762079268_1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조직위원회는 흑자 올림픽으로 결론 내는 자료를 발표했다. 사용 예산 13조8000억원(고속철도 건설비 9조, 경기장 건설비 2조, 운영비 2조8000억)에, 13조 9496억원+α를 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불과 2~3주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 적자 예상이 대부분 언론의 우려였다. 공신력 있는 조직위의 발표는 우려를 단방에 날렸다. 이를 바탕으로 한 언론 평가도 예상과 다른 흑자를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며칠 지난 뒤 구체적으로 살펴본 언론, 단체들이 이견을 냈다. 수입 13조9496원+α 가운데 국비·지방비가 12조원, 즉 세금이었다. 세금 지원을 수입으로 잡은 것이다. 조직위 차원의 수익·비용 측면에선 흑자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국가 차원에선 적자인 게 합리적 시각 아닌가.

틀린 사실은 없다. (SOC 투자 11조원을 감안하더라도) 흑자 기조에 맞춰 진실이 편집됐다. 적자인가 흑자인가. 물론 경제적 효과 등 무형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환경 복구 및 시설의 유지 관리비용도 따져봐야 한다.

확률·통계에서 '심슨 패러독스'란 용어가 있다. 세부 집단의 추세나 경향성이 전체로 보면 그 추세가 사라지거나 반대의 경향성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통계적 상관관계 해석의 함정을 지칭한다. 유명한 사례가 있다. 1973년 미국 유명 사립대의 합격비율이 남 44%(자원자수 8442명), 여 35%(4321명)였다. 일부 언론과 대중이 성차별을 제기했다. 한 여성이 고소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체 85개 학과의 남녀 합격률을 따져보니 여성이 유의미하게 높은 학과 6개, 남성이 4개였다. 개별 학과로 보면 여성 합격률이 남성보다 높거나 비슷한 학과가 더 많았다. 왜 그런가. 전체적으로 여성은 주로 인기 좋은 즉 경쟁률이 높은 학과에 지원해 낮은 합격률을, 남성은 덜 인기 있는 학과에 지원해 높은 합격률이었다고 분석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간선제)에서 발생하는 선거인단 주별 승리와 전국 득표율 불일치도 같은 사례다. 2016년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인단 합계는 304명으로, 힐러리 클린턴(227명)을 이겨 당선됐다. 그러나 전체 유권자 득표율에서는 46.1% 대 48.2%로 졌다. 조지 부시와 엘 고어의 2000년 대선도 마찬가지. 한국 총선에서도 전국 득표율은 이겼는데 지역구 의석수는 뒤집히는 사례가 가끔 있다.

지난 3일 삼양라면이 '삼양라면 1963'을 출시했다. 1989년 11월 3일 검찰은 이른바 우지(소기름)라면 사건을 발표했다. 정확히 36년이 되는 그날이다. 김정수 삼양라면 부회장은 '과거 삼양라면 제조 레시피의 핵심이었던 우지를 활용해 면의 고소한 맛과 국물의 깊은 맛을 높였다'고 의도적인 첫마디로 새 제품을 설명했다.

당시 검찰 발표로 온 국민이 먹는 라면을 공업용 우지로 만든 악덕 대기업, 사회적 무책임, 일벌백계 등의 프레임과 여론 관점이 형성됐다. 가공하면 먹을 수도 있는 뜻의 비식용 우지(inedible tallow)가 공업용 우지로 과장 해석되고, 이를 근거로 먹지 못할 불량식품이라는 인식이 기정사실화되며, 일부 시민단체는 이익을 위해 먹거리로 장난치는 나쁜 기업이라 몰아붙이고, 여론은 불매운동으로 향한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진상 조사를 언급했을 정도였다. 1심 유죄, 2심 무죄를 거쳐 8년 뒤인 1997년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 하지만 그동안 구속자 10명과 부도난 회사, 삼양라면을 떠난 사람 1000여 명과 회사 이미지 및 매출 곤두박질로 이어졌다. 결과적인 허위 정보에 온 국민이 휘둘렸다. 편향된 수사와 언론과 시민단체의 과잉 추론, 휘둘리는 여론, 이를 활용하는 일부 의견 등이 어우러진 블랙 코미디였다.

진실은 편집된다. 의도적으로 편집할 수도 있다. 수많은 사실과 진실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또는 슬쩍 거짓을 보태) 진실은 달라질 수 있다. 선택 과정에서 맥락을 배제하고 전체적인 공의에 눈감으면 그렇게 된다. 현실을 재구성하기도, 관점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분적 진실만 의도적으로 채택하면 그 확률은 높아진다.

진실은 복잡하다. 중요한 일을 판단할 땐 그 일의 역사와 맥락, 통계, 배경 등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여러 관련 진실 중 선택, 생략, 편집 등을 통해 전체가 왜곡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우리 정치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단순명쾌한 정의(定義)는 그래서 한꺼풀 들춰봐야 더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있다.

'사필귀정'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여론' '라면의 귀환'이란 표현을 쓴 김 부회장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초석"이라고 '우지 라면' 출시 의미를 설명했다. 30여 년의 엄청난 억울함을 꾹꾹 참고 넘어선, 겸손하지만 강렬한 표현이다. 부디 그런 기업이 돼 국가와 회사 이익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거짓은 날아가지만,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지 않게 되는 때는 너무 늦어버린 이후다.(조나단 스위프트)'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