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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경제의 패러다임은 광고에서 결제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의 웹 경제는 사람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트래픽이 광고 수익으로 연결되는 '광고'와 '구독'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웹을 탐색하고 결제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공식은 깨지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더 이상 광고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펼쳐질 웹3.0시대에는 AI 에이전트가 필요한 데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창작자에게 건당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재편될 것이다. 예를 들어,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유전자 데이터 API를 $0.15에 호출하거나, 또는 어떤 연구 논문을 $0.03에 구매하는 식의 소액 마이크로 결제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 문제는 기존의 결제 시스템이 계정 생성, 신용카드 입력, 복잡한 회원가입 및 카드 인증 절차 등 철저히 인간의 개입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점인데, AI가 수백 개의 유료 서비스에 접근할 때마다 사람이 개입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결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프로토콜이 'x402 프로토콜'이다. 코인베이스와 클라우드플레어가 손잡고 내놓은 x402 프로토콜은 30년 동안 사용되지 않고 잠들어 있던 웹 표준 HTTP 상태 코드인 '402 Payment Required'(결제 필요) 코드를 블록체인 기술로 부활시킨 것이다.
x402의 작동 방식은 매우 간결하다. AI가 유료 API나 데이터에 접근을 요청하면, 서버는 결제액과 지갑 주소가 담긴 '청구서(402 응답)'를 보내고, AI는 이 청구서를 받으면 즉시 스테이블코인으로 대금을 지불하고 데이터를 받아 온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의 승인 없이 자율적으로 처리된다. 이 프로토콜의 채택율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 6개월간 x402 기반 온체인 거래(트랜잭션)는 18만 5,700배 이상 폭증했으며, 한 달 동안 10,0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인터넷 경제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x402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참여하고 있다. 코인베이스가 프로토콜 설계를 주도했고, 클라우드플레어와 'x402 재단'을 공동 설립하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구글은 AI 에이전트 간 소통 프로토콜(AP2)에 x402를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비자(Visa)와 같은 전통 금융사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 역시 x402를 AI가 직면한 결제 및 정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접근 방식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작동되는 A2A 경제 모델에서 화룡점정은 스테이블코인이다. AI 네이티브 결제 시스템은 프로그래머블하고, 빠르며, 접근성이 뛰어나야 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꼽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AI 에이전트가 코드로 직접 제어 가능하며, 'A 조건이 충족되면 B에게 C만큼 자동 지불'과 같은 실행이 가능하다. 또한 전통적인 신용카드 거래가 며칠이 걸리는 데 반해, x402를 통한 체인 상 결제는 2초 이내에 최종 확인을 수행할 수 있다. 신용카드는 일반적으로 고정 수수료와 거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레이어2 메인네트워크에서 x402의 거래비용은 0.0001달러 이하에 불과하다. 적은 비용은 A2A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액 결제를 부담 없는 수수료로 처리할 수 있다.
다가올 미래에 AI 에이전트가 아주 작은 금액 단위의 'Agent 간(A2A) 결제'를 수행해야 할 때, 사실상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은 블록체인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금융계는 AI 에이전트가 미국의 달러 스테이블코인(USDT, USDC)이나 일본의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여 결제하게 될 경우, 금융 종속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AI 시대에 걸맞은 한국 고유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AI 에이전트 경제 시대에 결제 서비스와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웹의 근본적인 문법을 '검색'에서 '지불'로 바꾸는 핵심 인프라다. x402 프로토콜은 AI의 '지갑' 역할을 하며, 스테이블코인은 그 지갑 속의 유일한 '화폐'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융합은 인터넷을 단순한 '정보 교환망'에서 '가치 교환망'으로 근본적으로 진화시키고 있으며, 이 결제 혁신을 통해 AI가 경제 활동의 진정한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인터넷 시대가 앞당겨지고 있다. 결제 서비스와 스테이블 코인 없이는 AI 에이전트 경제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는 결코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장 민 한국디지털자산평가인증 전문위원·포스텍 블록체인 연구센터 부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