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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KTX·SRT 통합, 노조 파업 대책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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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15. 17:45

설진훈
설진훈 논설위원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막을 닷새 앞둔 2019년 11월 20일. KTX를 운행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철도노조는 4조 2교대 도입에 대비한 4000명 인력 충원, 임금 4% 인상, SR과의 통합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파업은 의외로 닷새 만에 싱겁게 종결됐다. 유난히 낮았던 파업 찬성률과 국제회의 차질을 우려한 여론 악화가 노조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경쟁사 SR이 수서발 고속열차를 100% 정상 운영해 국민 불편을 줄인 영향이 컸다. 2016년 12월 SRT 개통으로 막을 올린 철도 경쟁체제가 노조의 파업 동력을 크게 약화시켰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주 철도노조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코레일 노사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과, 지난해 12월 철도노조의 준법투쟁과 파업이 7일 만에 종결된 것도 어쩌면 경쟁사 SR 덕분인지 모른다. SR이라는 우회로가 있었기에 예전보다 협상력이 약해진 철도노조가 만족스럽지 못한 협상 결과에도 파업을 서둘러 접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르면 내년 말부터 이런 파업 충격 완화 장치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는 KTX와 SRT로 이원화된 고속철도를 내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어렵사리 도입된 철도 경쟁체제가 10년 만에 막을 내리는 셈이다. 코레일이 자회사격인 SR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독점체제로 되돌아가면 장기적으로 철도 요금이 상승하고, 서비스 질은 떨어질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두 기관이 통합하면 KTX요금에서 10%의 인하 여력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본사 관리부서 이중 운영, 예매 앱과 결제시스템 별도 구축, 고객센터와 승무원 교육시설 등 연간 400억원의 중복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점의 폐해로 적자가 더 쌓이면 언젠가 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보수도 아닌 진보진영인 노무현 정부가 지난 2004년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맨 처음 추진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SR 설립 등 경쟁체제 도입이 착착 진행됐고 국민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SR 측은 "SRT요금이 KTX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지난 9년간 인상 없이 국민 교통비를 약 8800억원 절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철도 경쟁체제가 국민에게 더 득이 됐다는 얘기다. 이런 논리로 SR노조측은 지금도 기관통합에 강하게 반대한다. SR노조는 지난주 발표한 성명서에서 "철도 경쟁력 저하 원인은 SR과 코레일 이원화가 아니라 공정경쟁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도적 불균형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레일은 정부로부터 SR지분 매수권과 차량기지·역사 우선 사용 등 수많은 특혜를 누렸지만, 자구노력은 전무했고 부채만 22조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더라면 SR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했을 것이고, 요금 인하도 가능했다는 얘기인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 일부 긍정적인 대목도 있긴 하다. 내년 3월부터 KTX를 수서역에서, SRT를 서울·용산역에서도 탑승할 수 있게 한 교차 운행이 그것이다. 수서발 SRT가 매진될 경우 비교적 이용률이 낮은 서울 KTX를 투입하는 식으로 운영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좌석수가 하루 1만6000석가량 증가할 것으로 코레일 측은 추산했다. 현재 SRT는 길게는 한 달 전부터 좌석을 예매해야 할 정도로 만성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수서역에 투입될 KTX-1 열차는 955석으로 SRT(410석)보다 좌석수가 두 배 이상 많다. 따라서 오는 2028년까지 병목구간인 평택~오송 구간을 복선화해 차량 운행 대수를 늘리기 전에도 좌석수 증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병목구간에서 경부·호남선 고속열차가 5분 간격으로 쉼 없이 운항하기 때문에 증차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코레일의 예상만큼 좌석수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SRT 좌석부족 문제를 해결할 근본대책은 선로 조기확충을 통한 열차 추가 투입이지, 통합 운행이 아니라는 얘기다. 코레일과 SR의 연간 여객수가 2017년 1억4730만명에서 지난해 1억7149만명으로 16.4% 늘었지만, 이 기간 고속열차 운행대수는 8% 늘었을 뿐이라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또 내년 말부터 SRT 새 고속차량이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어서 통합하지 않더라도 좌석 공급은 늘게 돼 있다. 새 차량은 기존 SRT보다 좌석이 93석 늘었는데, 14대가 모두 투입되면 지금보다 하루 2만5000석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처럼 효과가 불분명한데도 정부가 서둘러 기관통합을 발표한 것은 민노총과 코레일 노조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과 민영화를 싫어하는 철도노조는 SR을 흡수 통합하는 게 숙원이었다. SR은 상급단체가 없는 단일노조 체제이지만, 코레일 1노조는 민노총 소속 핵심 사업장이다. 철도노조는 지금도 조합원 2만2000여 명을 거느리며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데 통합노조야 오죽하겠는가. 내년 이후 통합노조가 국민의 발을 볼모로 철도 총파업을 벌일 때 정부는 과연 대책이 있긴 한가.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다면 교차운행은 몰라도 기관통합은 지금이라도 백지화하는 게 옳다. 아무리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도 해도 국민편의보다 우선일 순 없지 않겠나.

설진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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