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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칼럼] AI 열풍은 거품인가, 거시 환경의 시험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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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22. 17:59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주식시장의 열기가 뜨겁다. AI 반도체와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주가는 급등했고, 몇몇 기업은 단기간에 수조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AI는 또 하나의 거품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 거품이냐 아니냐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열풍이 앞으로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자산 가격의 역사에서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고, 그 신호는 가격 그 자체보다 이를 떠받치는 경제 여건이 변하면서 나타났다.

금융전문가 루치르 샤르마는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자산 버블이 커질 때 공통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 징후로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 실제 가치보다 앞서가는 가격, 수익성 검증을 앞선 과잉 투자, 그리고 과도한 차입을 동원한 위험 감수를 꼽는다. 최근 AI 열풍은 이 조건을 상당 부분 충족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거의 모든 산업의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낙관이 확산됐고, 기업 이익보다 먼 미래의 기대에 근거한 가치평가가 늘었다. 실제로 미국 주가 상승분의 대부분은 AI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소수 기업에서 나왔다. 동시에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의 투자 규모는 매출 대비 과거 기술 버블 시기와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아직 금융시스템 전반에 과도한 레버리지가 쌓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이번 AI 국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2000년 닷컴 버블과 같은 자산가격 조정의 위험은 분명히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AI 투자 붐이 자산시장에 새로운 취약성을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S&P500에서 정보기술(IT) 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로, 닷컴 버블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테슬라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이 전체 지수의 약 33%를 차지한다. AI 관련 기대가 소수 대형 기업에 지나치게 쏠려 있어, 일부 기업의 실적이나 전망이 흔들릴 때 충격이 시장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조정의 계기는 기술 그 자체보다 금리와 유동성의 변화에서 나타났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도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연준의 긴축 전환 이후 급격히 식었다. 1999년 중반부터 2000년까지 미 연준은 물가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75bp 인상했고, 이후 가장 비싸고 가장 낙관에 의존하던 기술주부터 무너졌다. 2007년 미국의 주택 버블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이 싸게 공급되던 환경이 끝나자, 버블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AI 열풍이 자산시장 조정이나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도 분명하다. 첫째, 실질 시장 금리가 오르거나 높은 수준에서 오래 유지될 경우다. 이 경우 먼 미래의 수익에 기대어 형성된 자산 가격은 빠르게 재평가된다. 둘째, AI 투자가 내부 현금흐름을 넘어 외부 자본과 사모 대출에 더 크게 의존할 경우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늘어나는 설비 투자를 감당하기 위해 과도한 외부 자본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런 구조에서 조정이 시작되면, 충격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번질 위험이 커진다. 셋째, AI의 생산성 효과가 기대보다 더디게 나타날 경우다. AI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잠재력이 크지만, 단기적으로는 학습과 전환 비용 때문에 생산성이 오히려 둔화되는 이른바 'J-커브'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현재 AI를 주도하는 기업들은 닷컴 버블 당시와 달리 실제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재무구조도 훨씬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AI가 전기나 IT처럼 범용기술로 자리 잡을 경우,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고 물가 압력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AI 열풍은 거품이 아니라 선제적 투자로 평가될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이 될지 지금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 중앙은행 총재들조차 거품의 존재와 그 정점을 정확히 맞힌 적은 없다. 앨런 그린스펀은 "거품은 꺼진 뒤에야 알 수 있다"고 말했고, 벤 버냉키와 제롬 파월 역시 뒤늦은 대응으로 비판을 받았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썰물 때가 되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썰물이 언제, 어떤 속도로 시작되느냐다.

AI 거품 논쟁에서 기술의 잠재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투자 자금이 어떤 조건에서 조달되고 있는지, 유동성 변화와 시장 금리의 움직임, 더 나아가 거시 환경 변화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다. 기술 투자에서 수익 실현만을 논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글로벌 경제성장이나 물가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오거나 금리 인하 흐름이 반전되면 거대한 썰물이 시작될 수 있다.

AI 거품 논쟁은 한국 경제에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역시 AI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투자자와 정부 모두 특정 기업과 산업에 위험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2026년을 맞이하면서, AI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불확실한 국제 거시 환경의 변화를 차분히 읽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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