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여의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韓 영화 산업에 던지는 교훈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224010013259

글자크기

닫기

조성준 기자

승인 : 2025. 12. 25. 13:59

넷플릭스 '…1975', 혼란의 미국 사회가 이끈 영화 발전 회고
한국 사회도 계엄 후유증·진영 갈등으로 위태로운 상황 처해
내년 韓영화, 현실 비판과 도전 정신으로 위기 타개하길 기대
조성준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무너진 세계: 1975'는 정치·사회·경제적 혼란이 오히려 예술의 질적 발전을 이끌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작품이 배우 조디 포스터의 내레이션을 빌려 회고하는 1975년은 베트남전 패배와 워터게이트 파문, 인종 차별 철폐 운동 등으로 미국 사회가 어지럽던 시기였다. 또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에 격분한 아랍권 국가들의 대미 석유 수출 중단을 비롯한 각종 악재가 더해지면서 뉴욕시가 파산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힘든 나날이었다.

흔히 '자본의 예술'로 일컬어지는 영화가 이 같은 상황에 영향을 안 받을 리 없었다. 얇아진 지갑과 더불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에 이미 젖을대로 젖은 관객들은 극장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영화 제작 편수는 빠르게 감소했다.

애가 탄 제작자들과 투자사들은 '극장 개봉 편수라도 채워보자'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의 비루한 속살을 고발하는데 거침이 없을 만한 새내기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입을 도왔다. 그 결과, '택시 드라이버' '네트워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개 같은 날의 오후' '도청' 등과 같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대표작들이 탄생했다.

2025년을 마감하는 시점의 한국 사회도 반 세기 전 미국 만큼은 아니지만, 병 조각이 꽂혀 있는 담장 위를 걷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시민의 힘으로 12·3 계엄을 이겨냈으나,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진영 대립과 세대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인공지능(AI)의 보급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먹고 사는 일도 예전에 비해 힘들어졌다.

이처럼 현실은 암울하고 미래는 불투명한 와중에, '무너진 세계…'를 보고 나니 이럴 때야말로 문 닫기 일보 직전인 한국 영화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시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떠나버린 관객들을 원망하고 빠져 버린 거품을 그리워하며 정부 지원만 마냥 기대하기에 앞서, 혁신적 영화 문법과 날 선 주제 의식에 집중했던 시절로 우선 되돌아간다면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하게 된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와 1960년대 프랑스의 누벨 바그 등 멀리까지 갈 필요 없다. 군부 독재의 상흔과 민주화의 열기가 공존했던 1980년대 후반,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파격적인 도전 정신으로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던 코리안 뉴 웨이브만 떠올려도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 백지 상태에서 새출발하는 우리 영화인들의 결기가 내년 스크린에서 관객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조성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