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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의 최신 녹색전환 정책과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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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25. 18:00

석선희 나가사키대 교수
나가사키대 석선희 교수
석선희 나가사키대 교수. /석선희 교수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 전환(Green Transformation·GX) 정책은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려는 전략적 시도다. 에너지 자급률이 낮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급격한 감축 중심 정책보다는 산업의 연속성을 지키면서 전환기술을 확충하는 방식을 택했다. 탄소중립이 산업경쟁력과 분리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GX 정책의 핵심은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전환을 뒷받침할 제도·재정·인프라를 정부가 먼저 준비하는 데 있다. 일본은 성장형 탄소가격제를 통해 탄소가격을 '부담'이 아니라 '투자 재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제, 전력 경매 수입, GX 세를 묶어 장기 재원을 마련하고, 약 20조 엔 규모의 GX 전환채권으로 수소·암모니아 공급망, 지속가능항공유(SAF)·전지기반연료(e-fuel) 생산시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클러스터 등 대규모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초기 전환비용과 위험을 완화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선택이다.

산업계의 대응도 이런 흐름을 따른다. 정유사는 기존 정유시설을 활용해 수소·암모니아·SAF 공급의 거점으로 전환하고, CCUS 실증과 해외 저장 협력으로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서의 역할을 넓히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CO₂ 기반 원료(CCU), 저탄소 에틸렌·프로필렌 기술 등을 도입하며 순환경제형·고부가 소재 중심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업종별 전환경로를 제시함으로써 기업의 투자 방향과 속도를 조율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한국과 일본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 두 나라는 모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정유·석유화학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러나 정책 환경은 다르다.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구조로 국제 규범과 배출권거래제(ETS) 비용, 공급망 규제(Scope 3·CBAM 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반면 일본은 내수 중심 구조, 완충적 제도 설계, 인프라 선구축을 바탕으로 기업 부담을 조절하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정책 기조와 실행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차이는 각국의 여건이 정책 선택을 다르게 만든 결과이다.

다만 일본의 GX 정책이 보여주는 접근, 특히, 전환기술과 인프라를 공공투자와 제도 설계를 통해 미리 마련하려는 전략은 한국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수소·암모니아·SAF·CCUS는 특정 기업만의 과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환에는 대규모 투자와 장기간의 불확실성이 뒤따르고, 민간이 단독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일본이 정부-산업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전환 리스크를 낮추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도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전환 인프라와 기술투자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 규범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기업이 예측 가능하게 투자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두 나라 모두 피해갈 수 없는 과제이며, 각국의 현실과 장점을 살린 전략적 설계가 요구된다. 일본의 사례는 그러한 설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참고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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