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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2000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D-Day 박물관'으로 출발하여, 이후 미국 의회로부터 공식적인 국가 전쟁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뉴올리언스가 전쟁 당시 상륙작전용 히긴스 보트를 생산한 도시였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입지 또한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있다. 정치적 전략이나 영웅 중심의 서사가 아닌, 병사, 간호사, 공장 노동자, 가족들의 목소리와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개인의 시선에서 본 전쟁은 숫자가 아닌 얼굴로, 연표가 아닌 목소리로 다가온다. 이는 전쟁의 참상을 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관람은 4D 영화로 시작된다. 배우 톰 행크스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이 영상은 전쟁의 전체 흐름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이어지는 전시의 맥락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이후 방문하게 되는 '캠페인 오브 커리지(Campaigns of Courage)' 전시관은 박물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두 개의 주요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유럽 전선을 다룬 'Road to Berlin', 다른 하나는 태평양 전선을 다룬 'Road to Tokyo'이다.
'Road to Berlin'은 북아프리카 상륙부터 노르망디, 그리고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유럽 전선의 주요 전투 과정을 다룬다. 참호 속 병사의 시선, 눈 덮인 아르덴 숲의 고통, 해방된 도시에서의 혼란 등을 통해 전장의 복잡성과 냉혹함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반면 'Road to Tokyo'는 태평양 전쟁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적 조건을 조명한다. 밀림과 산호초, 고온다습한 기후, 해상 보급의 어려움 등 태평양 전선의 특수한 전투 환경이 실감 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섬마다 반복된 상륙전과 그 속에서 벌어진 전투는, 전쟁이 단순한 전략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생존이 맞닿은 극한의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두 전시관은 전쟁의 전개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구성하면서도, 전투 현장의 감정과 분위기를 세밀하게 전달한다. 전쟁을 단순히 연대기로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공간과 환경이 전투에 미친 영향을 전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박물관의 마지막 구역인 '해방 전시관(Liberation Pavilion)'은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 변화와 사회적 함의를 다룬다. 해방과 점령, 냉전의 시작, 국제연합의 형성, 난민 문제와 인권운동 등 전쟁이 남긴 구조적 유산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명한다.
전시를 관람하며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7000만에서 8500만명에 달하며, 전체 희생자는 1억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박물관은 그러한 숫자를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각 전시는 이름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인간적인 기억의 틀 안에서 전쟁을 재조명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희생 위에 어렵게 구축된 질서이며, 그 기억을 이어가는 노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전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기억을 멈추는 순간 다시금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박물관을 나설 때 느껴진 무거움은 불편함이 아닌 책임감이었다. 뉴올리언스를 찾은 이들에게 이 박물관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공간이 아니라, 전쟁과 인간, 기술과 사회, 그리고 기억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소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로 손꼽을 만하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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