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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적군이 본 한국전쟁과 남북한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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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2. 29. 18:01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정기종 전 카타르대사
중국의 전쟁역사가 왕수쩡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쟁 철학은 인간으로 한국전쟁에서도 이것을 실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자기만족감이 강하고 비난을 용납하지 못한 인물로 보았다. 언론보도에 관심이 많고 화술이 좋으며 사진사가 만족할 연출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1950년 10월 15일 웨이크섬 면담에서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국의 참전 전망은 거의 없다"고 보고했으나 다음 날 10월 16일 지원병으로 가장한 중국군 선발부대가 압록강을 넘었다. 사령관 펑더화이는 "맥아더의 판단 착오를 이용해 적에게 약하게 보여 깊숙이 유인한 다음에 기회를 잡아 섬멸한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산맥 정상 요지에 병력을 매복시켜 계곡 길을 전진하던 국군과 유엔군을 타격해 전세를 바꿨다.

거의 동시에 소련도 비밀리에 참전했다. 11월 1일부터 소련 공군은 최신형 MIG15기를 투입해 중국군의 지상 작전을 지원했다. 조종사들은 중국 군복을 입고 중국어로 통신하면서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의 '미그 회랑(MIG Alley)'으로 불린 비행구역을 장악했다. 소련 해체 후 공개된 소련군 조종사의 증언은 중국언론에 '사람들이 모르는 전쟁(不爲人知的戰爭)'이란 제목으로 연재됐다. 1951년 4월 12일 미(美) 공군은 B29 폭격기 72대와 F80 전투기 32대로 압록강 철교 폭격에 출격했고 소련 공군은 60여 대의 MIG15 전투기로 요격해 B29 폭격기와 F80 전투기 다수를 격추 또는 파손했다. 미 공군은 이날을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로 불렀고,그해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보내겠다는 미군의 예상을 벗어난 1·4 후퇴로 서울을 다시 북한과 중국군에 빼앗기는 상황을 만들었다.

북한이 중·러의 지원과 미국의 '애치슨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을 온전히 믿고 시작한 침략전쟁은 다시 38선으로 돌아와 휴전선이 됐다. 그리고 남북 간의 막대한 물적 인적 피해와 깊은 원한만을 남겼다. 남한에서는 휴전협정 체결을 3개월 앞둔 4월 21일 국회는 '북진통일국민총궐기운동전개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해 정부로 보냈다. 전황과 참전국들의 입장을 도외시한 결과는 비현실적 상황인식을 하게 했고 정전협정에 불참해 이후 유엔사령부(UNC)와의 관계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해방 후 국내에서 계속된 정치적 혼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미국으로부터의 귀환 세력과 국내 정치세력 간의 대립은 극단적 투쟁이 돼 주요 정치인들이 살해되고 군과 경찰 정보기관은 대외 정보의 취득과 분석보다 국내 정치정보에 민감했다. 국방을 위한 간언보다 강력한 국군이 아침 점심은 서울과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을 수 있다는 무책임한 북진통일을 당연시했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모두는 국제정세에 둔감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즉각 방어 전쟁에 나설 중요한 국가를 불과 5개월 전에 방어선 제외를 선언해 북한과 중·소의 오판을 초래한 미국의 정치와 군사전략가들 역시 이러한 오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연인원 150여 만명의 젊은 장병이 참전해 전사 3만여 명과 부상 10만여 명 그리고 8000여 명이 실종 또는 포로가 됐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전쟁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고 이것은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관련국들의 공세적 외교활동이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북한의 적대적 대남 정책 역시 가열화된 상황에서 우리의 대외정보 수집과 분석의 역량 강화는 필수적이다.

2023년 11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제96차 통일학 포럼 '국제 미디어' 연구발표는 정확한 북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북한과 관련한 상업성 또는 공작성 허위정보를 검증해야 정확한 대책을 마련할 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2006년 2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북한에서 근무한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J. Everard)는 '영국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Only Beautiful, Please)'에서 "북한정세 전문가들 상당수는 북한 땅을 밟아 본 적도 없으면서 이 회의 저 회의를 돌아다니며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생각을 교환하는 일로 먹고산다. 북한에서 실제로 일했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관해 더 많이 쓴다면 그리하여 아주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북한에 관해 장황하고 거슬리게 써 온 일부의 주장을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 나라에 관해 토론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며 북한 관련 정보유통의 개선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기간에 국력 상승을 경험한 나라는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상 심리가 나타나게 된다. 칭찬에 약하고 과시욕이 커지는 성향을 갖기 쉬운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주재 호주대사를 지낸 아시아 전문가 맥마흔 볼(W. M. Ball)은 '동아시아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Nationalism and Communism in East Asia)'에서 한국전쟁은 유엔의 진영화를 추동했으며, 양대 강국과 그 세력권 어느 쪽도 남북한을 연결시켜 주기보다 분리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한반도 문제의 해결 여부는 한민족 스스로에게 달려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종전 70여 년이 지나 다시금 미·중 간의 쟁투와 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모든 책임을 외세에만 돌리는 것은 정직한 판단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주변국에 대한 현실감각을 쇄신함으로써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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