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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디엄 가운데 태극기가 휘날리는 날을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날이 생각보다 가까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작은 발걸음은 단순히 목표를 향한 첫 시작을 넘어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브랜드의 철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르망24시가 열린 프랑스 라 사르트 서킷을 찾았을 때 들었던 생각입니다. 수십 대 경주차가 포효하며 질주하는 현장. 포디엄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 현실성 없는 상상이었습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은 세계 최정상급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은 글로벌 3위 자동차 제조사로 올라선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존재감은 희미합니다. 이름난 팀도, 상징적인 드라이버도 없습니다. 산업의 성취와 레이싱의 역사 사이 간극은 여전히 큽니다.
최근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이 2026 시즌을 앞두고 한국인 드라이버 신우현(2004년생)과 이규호(2008년생)를 자체 인재 육성 프로그램 '트라젝토리(Trajectory)'에 포함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단순한 후원이나 인재 발굴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제네시스가 유럽 시장에서 쌓아가고 있는 시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유럽에서 모터스포츠는 단순한 경기가 아닙니다. 기술력과 내구성, 그리고 브랜드 철학을 검증받는 무대입니다. 제네시스가 고성능 브랜드 '마그마'를 전면에 내세우며 레이싱에 발을 들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럽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성능과 기술 서사가 필요합니다.
한국인 드라이버 육성은 상징성이 큽니다.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리조트 고문의 막내아들이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조카인 신우현은 이제 막 유럽 무대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선수입니다. 출발도 늦었습니다. 대부분 10세 이전에 레이스에 입문한 해외 경쟁자들과 달리 신우현은 16세 이전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집요함과 꾸준함으로 격차를 줄여가고 있습니다. '한국인 유일 F3 풀시드 드라이버'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올해는 하이텍 TGR 소속으로 F3 무대를 누빕니다. 물론 그의 이름 앞에는 늘 '현대가(家)'라는 수식이 따라붙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앞으로 F1 진출 가능성을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개인의 배경이나 단기 성과가 아닙니다. 신우현이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의 드라이버 풀의 일원으로 활동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최초의 드라이버 출신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은 더욱 큽니다. 그룹의 미래 전략과 맞닿은 영역에서 '직접 뛰는 내부 인재'가 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유럽은 현대차그룹이 지난 수십 년간 실적과 입지를 쌓아온 요충지입니다. 최근 3년간 현대차·기아의 유럽 판매는 연간 100만대를 안정적으로 웃돌며, 양적 성장을 넘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현대차그룹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가 선택한 무대가 모터스포츠라는 점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으로 읽힙니다.
유럽 자동차 산업에서 모터스포츠는 기술·내구·성능을 검증받는 최종 시험대입니다. 고성능 파워트레인과 열관리 기술, 내구 데이터, 드라이버의 피드백이 축적되어 자산이 됩니다. 제네시스는 유럽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적 스토리를 내부 역량을 통해 단계적으로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과 트라젝토리 프로그램은 드라이버 개인을 키우는 동시에 브랜드 기술 자산을 축적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에 합류한 신우현 개인의 성공 여부를 넘어 이 시도가 현대차그룹과 한국 모터스포츠의 새로운 역사입니다. 레이싱을 통해 축적되는 고성능 기술과 경험, 그리고 '한국도 모터스포츠에 진지하게 도전하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프랑스의 라 사르트 서킷에서 어색하게 느껴졌던 상상이 곧 자연스러운 장면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만으로도 제네시스와 신우현의 도전을 지켜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