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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장에서 그 숙제를 풀었다.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도심 한복판, 비교적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화려한 전시(展示) 기법이나 감각적 연출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장치는 결국 한 가지를 향해 수렴했다. "이념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만들었는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든 첫 감정은 '우울함'이었다. 그런데 그 우울함은 슬픔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판단과 가치관을 끝까지 붙잡고 가라고 요구하는, 묘하게 날카로운 우울함이었다.
이 박물관은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 비영리 단체가 입장료도 받지 않고, 기부를 통해 운영한다. 전시는 '공산주의의 부상→공포의 통치→저항과 자유'라는 흐름으로 관람자를 끌고 간다. 초입에서는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형성 같은 거대한 서사가 등장하고, 곧이어 개인의 삶을 파괴한 폭력의 행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는 공산주의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과정과 그에 맞선 저항을 보여주며, 오늘도 이어지는 억압의 현장까지 연결한다.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나라 이름이 자연스럽게 지도처럼 펼쳐진다. 소련과 동유럽, 중국, 캄보디아, 쿠바, 베트남….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특히 낯설지 않은 이름, 북한이 등장한다. 어떤 체제든 '이론'으로만 존재할 때는 말끔해 보이지만, '국가'가 되고 '권력'이 되고 '조직'이 되는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갖는다. 혁명은 해방을 약속하지만, 해방을 집행하는 권력이 비판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을 때, 약속은 곧 명령으로 바뀐다. 그때부터 '사람'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된다.
인상 깊은 대목은 통계보다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 박물관은 "공산주의로 1억 명 이상이 희생됐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둔다. 숫자는 강력하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비극의 결을 다 담지 못한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일기, 한 장의 사진, 한 번의 체포 기록이 더 오래 남는다. 굶주림이 '정책'의 이름으로 찾아오고, 의심이 '반동'이라는 딱지로 굳어지고, 침묵이 '충성'으로 강요되는 과정이 전시 곳곳에 스며 있다. 그때 관람자는 깨닫게 된다. 폭력은 언제나 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언어로 시작한다. '인민', '정의', '역사', '적' 같은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구분하고 재단하는 칼이 된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대목은 탈출과 정착의 이야기였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증언이 전시의 톤을 바꾼다. 그들은 체제를 떠나는 순간부터 또 다른 전쟁을 치른다. 국경을 넘는 위험, 남겨둔 가족에 대한 죄책감, 새로운 사회에서의 생존…. 자유는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사실이, 그 증언을 통해 선명해진다. 특히 북한 관련 전시를 마주할 때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구체적인 목소리를 갖는다. 누군가에게 자유는 사상 논쟁이 아니라,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은 국가 박물관이 아니라 민간단체가 만든 기억의 공간이다. 전시는 분명한 관점을 갖고 사실을 배열한다. '공산주의'라는 한 단어 아래 복잡한 역사들이 한데 묶일 때 도식화의 위험도 생긴다. 그래서 관람자는 내용과 함께 "어떤 틀로 무엇을 강조하는가"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그래도 희생자의 목소리 앞에서는 도식보다 인간이 먼저다.
물론 자본주의에도 문제가 있다. 불평등, 배제, 탐욕, 위기.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믿음 역시 위험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결함을 비판하는 일과, 공산주의가 더 나은 선택인지 묻는 일은 같은 질문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종종 "더 공정한 사회"라는 이상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되고 반대가 범죄가 되는 구조에서는 공정이 아니라 공포가 작동한다. 박물관을 걷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이것이었다. "자본주의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대안이 곧 해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체제를 고칠 통로가 살아 있는가 하는 문제다.
워싱턴에는 세계가 기억해야 할 비극을 다루는 공간이 많다.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이 '증오가 제도화될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준다면, 공산주의 희생자 박물관은 '이념이 권력의 언어가 될 때' 인간이 어디까지 밀려나는지 묻는다. 두 곳 모두 관람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우리가 다시는 같은 문턱을 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워싱턴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을 권하고 싶다. 즐거운 여행 코스는 아니다. 그러나 45분에서 한 시간, 일정의 틈을 내어 '생각의 빚'을 갚는 경험은 해볼 만하다. 이념은 언제나 아름다운 말을 앞세운다. 문제는 그 말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의 입을 막고, 누구의 삶을 지워 버리는가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에 나는 다시 확인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완벽한 체제'가 아니라, 체제를 비판하고 고칠 수 있는 자유와 제도, 그리고 한 사람의 존엄이라는 사실을.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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