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새겨진 그림과 우화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60208010002836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6. 02. 08. 17:41

20241228_루이즈부르주아 모마 소장품
루이즈 부르주아의 우화 판화집, "그는 완전한침묵속으로 사라졌다"(He Disappeared into Complete Silence) 1946-47, 9번중 7번. 17.8 x 13.8 cm/sheet: 27 x 21.5 cm, MoMA Collection, 사진 제공 김주원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는 1938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 (1907-1973)를 파리에서 만나 3개월 만에 결혼한 후 뉴욕으로 이주했다. 부르주아의 1947년 작 '그는 완전한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He Disappeared into Complete Silence, 1947)는 아홉 점의 인그레이빙 기법의 그림과 짧은 우화가 활판 인쇄된 판화집이다. 건물, 망루, 플랫폼, 사다리와 같은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구조물에 인간적인 특성을 부여한 아홉 점의 그림과 부르주아가 직접 쓴 부조리하고 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의 주된 이미지는 뉴욕의 마천루다. 프랑스 등 유럽과는 달리, 전쟁을 피한 미국 뉴욕 맨해튼은 이미 1920년대부터 50층을 넘는 마천루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1930년대 들어 대공황의 와중에도 월 스트리트, 크라이슬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어 올리며 197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순위는 뉴욕 내에서만 갱신하였다. 그녀는 이 위압적인 크기의 건축적 구조물을 의인화하여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좌절과 그로부터 비롯된 작은 비극들을 진솔하고 거침없이 표현했다. 프랑스에서 이민 온 여성 예술가에게 미국 뉴욕에서의 삶은 매혹적이면서도 거듭되는 고독과 불안, 좌절, 소통의 오류 등의 복잡한 양가적 감정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그림과 함께 제시되는 수수께끼 같은 우화들은 다음과 같다.

우화1은, 6번가 지하철 8번가 역 옆에서 연인과의 데이트를 약속한 소녀가 예쁜 옷과 모자로 치장한 채 기다리던 남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우화2는 울워스 빌딩의 고독한 죽음.

우화3은 한 남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이 너무 빨라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우화4는 내가 어렸을 적, 내 어머니였던 한 어린 소녀는 설탕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아주 많이 아끼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땅에 구멍을 파고 설탕을 숨겨두곤 했는데 땅이 축축하다는 사실을 항상 잊어버렸다.

우화7은, 남편이 아내에게 화가 나서 아내를 살해하고 스튜를 만들어 친구들과 저녁식사 파티를 했다. 친구들은 모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소 섬뜩하고 비극적인 그러나 유머러스한 우화들은 부르주아가 뉴욕 생활에서의 완전한 대립과 적응하는 과정, 그녀의 외로움과 생존을 위한 투쟁 등을 함의하고 있다.

부르주아의 뉴욕에서의 작업은 1947년 즈음까지 판화를 주요 매체로 다뤄 왔다. 이 작업 역시 영국화가 스탠리 윌리엄 헤이터(Stanley William Hayter, 1901-1988)의 유명한 판화 공방 '아뜰리에 17'에서 구상된 작업이다. 당시 뉴욕의 '아틀리에 17'에는 부르주아 외에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 이브 탕기 그리고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같은 유명 남성 작가들이 함께 있었다. 당시 남편인 골드 워터는 1924년부터 뉴욕 대학에서 강사로 있었고, 1938년부터 1957년까지는 퀸즈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57년에는 뉴욕대학의 미술사 교수가 되었다. 1947년부터 1953년까지는 매거진 오브 아트(Magazine of Art)의 편집 발행인으로, 1957년부터 1963년까지는 뉴욕의 원시미술관(Museum of Primitive Art) 관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미술비평가 루시 R. 리파드 (Lucy Rowland Lippard, b.1937)는 이 작품이 제작되던 1940년대 후반 루이즈 부르주아가 이민 후 입양과 연이은 출산으로 세 아이를 키우는 젊은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책임과 예술 활동 사이에서 갈등했던 개인적인 고뇌의 시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일까. 루이즈 부르주아는 이 작품을 자신의 "자아의 드라마(a drama of the self)"라고 묘사했다. 이민자, 예술가,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자신의 삶을 반영한 심리적 자화상이라는 이 그림들이 왜 이토록 관객들에게 지독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일까?

평면에 '새겨진' 진솔한 이미지와 텍스트여서 보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깊숙이 새겨지는 것일까. 어쩌면 이 작품이 자신의 갈등과 진심, 트라우마를 꾹꾹 눌러 새기는 기법과 매체를 통해 승화의 과정을 공감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 이는 개념과 기술 등이 난무하는 동시대 현대미술 신(scene)에서 예술가에게 매체가 중요한 이유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