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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승제의 관상산책] <7> 달마조사 상결비전 1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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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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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승제 미래와학문연구소 소장
보디다르마(Bodhidharma, 다르마를 깨달은 자) 즉 달마는 전설적인 인물인데, 5~6세기경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때는 선비족이 천년 패권(몽골제국 포함)을 열어젖힌 북위제국 시대다. 중국 전통의 책들은 위서가 많은데, 달마에 대해서도 허무맹랑한 신화 속 얘기 같은 것들이 덧붙여지고 있다. 이유 중 하나는 저술에 권위를 부여하고자 유명인이 저술한 것으로 꾸며내는 것이 관행이 됐기 때문이다. 선학을 황하 유역에 최초 전파한 달마의 이입사행론도 북위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성한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됐다.
상서에서 흔한 달마상법 같은 글들은 상학이 유목적 전통을 배경으로 발아한 조로아스터 세계관의 성립으로부터 파생돼 나온 여러 학문 중 하나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당시 달마뿐 아니라 인도아리안계 승려들이 포교를 위해 다수 이주해왔다.

이유는 5호 16국 시대 패권을 장악한 북방 민족들이 대초원길을 통해 교류하느라 그들과 친숙한 탓에 쉽게 받아들인 때문이다.

달마는 남인도 출신 왕자였다는 것이 통설처럼 유포된다. 하지만 외모 특징으로 보거나 그 시대에 불교가 왕성했던 지역으로 본다든가 하면 서북 인도(현 아프간니스탄을 중심에 둔 너른 지역) 출신이라고 본다.

생애와 가장 인접한 시기의 초기자료[예, 낙양가람기(547년 전후 저술)]는 달마를 페르시아[파사(波斯)국]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달마조사 상결비전은 5법까지 나열하고 있다. 그것도 달마가 바닷길로 왔다고 주장한다. 전남 해남에도 달마와 인연을 주장하는 곳이 있다. 마치 바닷길로 왔다는 주장이 뿌리가 깊어 보인다. 달마의 선종 계보를 잇는 제자들은 초기에는 북종선과 연이 닿고 남종선은 달마로부터 한참 내려가야 한다. 달마의 직전 제자(직접 전수받은 제자)인 2조 혜가는 황하유역 출신이고, 3조 승찬, 4조 도신도 대략 같다. 5조 홍인은 호북성, 그리고 남종선의 개창자 6조 혜능(7~8세기 초)은 오늘날 광둥성 광저우(廣州) 인근 사람이다. 필자는 타이완 맞은편 복건성에 해상실크로드 답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순수한 월족들은 그곳 중심으로 거주한다고 볼 수 있는데, 월족들의 마조신앙(항해의 여신)과 달마신앙이 겹쳐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인(南人)이 본래 갈라치기에 능한 습속이 있다. 선에 대하여서 남과 북이 본래 있던 것이 아닌데 혜능이 갈라치기한 측면이 있다.

각설하고 상결비전 제1법(第一法)은 상주신(相主神). 즉 관상을 본다는 것은 눈 중에서도 동자를 보라는 것이 핵심이다. 눈빛 즉 신광(神光)이라 할 때, 신(神)은 간단히 말하면 빛이다. 정신이나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빛이란 사라져 버린다. 상학에서 백색·청색·적색·흑색 나쁜 색들을 열거해 보면 그 모두 빛이 없거나 적다.

사실 빛이 없다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빛을 논할 것이라면 생명이 있는 상태인 만큼 당연히 적더라도 빛은 있다. 반대로 상학에서 자색·홍색·황색 등 좋다고 말하는 색은 맑은 빛이 새어 나오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빛은 불거져 나오면 곤란하며 [노출되지 말 것: 불로(不露)], 그믐달 같은 눈은 빛이 없는 것이다[회자(晦雌)는 무신(無神)]. 눈빛이란 겉으로 흩어지지 아니하고 은은하게 속에서 잠중되어 빛나고 반짝이는 것이, 잘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이, 일품인 것이다. 눈 속에서 보석을 감춘 듯하여야 할 터인데, 동자가 다 드러나면 곤란하다. 동그란 동자는 모습을 다 보이지 말 것이니, 동자의 아래위가 각각 상파와 하파로 조금씩 가려서 절반 정도 감추어져야 한다[함장불로(含藏不露)]. 둥글고(圓) 드러난(露) 눈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겉으로 빛이 풍겨 나올 정도면 곤란하다[신산(神散)]. 직전에 연재한 <6> 점칠(點漆)도 자세히 설명했다.

눈빛은 편안하여야 한다[안불우(安不遇)니 편안한 것은 요동치지 아니함이요, 어리석은 자는 통변하지 못한다]. 눈빛이란 은은하면서도 힘차게 뻗어 나오되 요동치지 말아야 한다. 눈 모양과 눈빛 모두 편안하여야 한다. 발불로(發不露)라 하였으니, 눈빛이 뻗어 나오되[필 발(發)], 빛이 노출되면 경박하고 초조하다. 눈은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리석다. 눈은 정신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한편, 맑되 메마르지 아니하고 윤기가 있어야 하는데 윤기 있는 빛이 아니라면 정말 멋진 빛을 발할 수 없다. 맑고 푸른 하늘처럼 맑기만 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윤기가 있어야 하며 그러해야 빛을 발할 수 있다.

눈빛이 맑은 사람은 사람을 쏘는 듯하다[신광사인(神光射人)]. 눈빛은 친화스럽고 자비로운 빛[화(和)]이거나 위엄이 있거나[원문은 '성낼 노(怒)로 의기롭게 양양한 정기를 갖춘 것을 의미] 강건한 눈[굳셀 강(剛)]은 좋은 빛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나운 [다툴 쟁(爭)] 눈이거나 약한 눈이거나 외로운[외로울 고(孤)] 눈은 곤란하다.

성승제 (미래와학문연구소 소장, 관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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