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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자연지능’의 귀환을 위하여-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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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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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인공지능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약속이 되었고, 신념이 되었으며, 때로는 신화가 되었다. 우리는 AI가 의료를 혁신하고, 교육을 개인화하며, 행정을 효율화하고, 예술마저 확장할 것이라 믿는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실수를 줄이고, 데이터는 편견을 제거하며, 자동화는 노동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이러한 기대는 점차 '기술 유토피아'라는 세계관으로 굳어졌다. 기술의 발전은 곧 진보이며, 더 많은 자동화는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준으로 발전하는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지표가 인간의 삶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가.

IT 기술이 가져온 속도 혁명은 분명 기술적 진보다. 하지만 그것이 곧 도덕적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보의 전파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지만, 진실에 도달하는 능력 역시 그만큼 정교해졌다고 말하긴 힘들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시앵 스페즈는 오래전 필자와의 대화에서 상징적인 사례를 언급한 바 있다. 루마니아의 구 공산 체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코가 수많은 양민을 집단 학살했다는 증거라며 한 무덤이 발견되었고, 루마니아 TV가 이를 폭로하자 전 세계 신문과 방송이 이를 인용·확대 보도했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사실은 그 무덤이 학살의 증거가 아니라 병원에서 사망한 시신들을 묻은 공동묘지였다는 점이었다. 속도는 진실을 확인하기 전에 확산을 선택했다.

스페즈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사회병적 증후군을 '토티즘(Tautisme)'이라 명명했다. 이는 자폐를 뜻하는 오티즘(autisme), 동어반복의 토톨로지(tautologie),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토털리타리즘(totalitarisme)을 결합한 개념이다. 미디어와 정보 체계가 자기 안에서만 증폭되고 반복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결국 하나의 닫힌 체계를 형성하는 현상이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성찰은 사라지고, 확산은 빠르지만 검증은 지연된다.

오늘날의 AI 환경은 이 '토티즘'의 구조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유사한 정보만을 추천하고, 강화학습은 반복을 통해 확신을 키우며, 여론은 데이터로 포장된 채 되돌아온다. 기술적 진보에 힘입은 속도 혁명은 도덕적 진보와 사회적 결속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오히려 분열과 확증 편향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것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되어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술 유토피아는 인간을 '개선 가능한 존재'로 본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결함은 제거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과 공감, 윤리적 숙고는 주변화된다. 알고리즘은 선택을 대신하고, 추천 시스템은 취향을 재구성하며, 예측 모델은 행동을 유도한다. 우리는 점점 '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결정의 수용자'가 되어간다.

프랑스에서 제기된 '자연지능(intelligence naturelle)'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흐름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디디에르 반 코벨라르는 인공지능이 범람한 시대에 오히려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었던 지능, 즉 자연과 생명체에 내재한 능력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식물과 동물, 심지어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는 복잡한 정보 처리와 의사결정 체계를 갖고 있다. 식물은 공격자를 인지하고 방어 신호를 전달하며, 동물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위험을 예감한다. 인간과 자연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온 감각과 직관, 공감과 상상력은 결코 비합리적 요소가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사회의 사고방식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더 빠른 연산과 더 정확한 예측을 진보의 지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속도는 방향을 대신하지 못한다. 데이터는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다. 자동화는 책임을 대체하지 못한다.

자연지능이라는 개념은 기술을 거부하자는 구호가 아니라 기술에 치우친 사고를 교정하자는 제안이다. 그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인간다움이라 부를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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