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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의로운 분노 없이 사랑만으로는 사회를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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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2. 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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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분노' 없는 '사랑'만으로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정의로운 분노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고 그는 주장했다.

위대한 책,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250년 전인 1776년 3월 9일 출간되었다. 다만 법학에 관하여는 이보다 먼저 출판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이 더 많이 언급되고 있고, 이 글은 주로 이 책에 근거한다. 참고로 스미스는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1752년부터 1764년까지 법학을 강의했고, 이름 모를 학생들이 작성한 '강의 노트 A세트와 B세트'가 전해진다.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正義(Justice)'를 실현하는 것이다. 정의란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르다고 느끼는 가치를 말한다. 스미스는 '正義'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定義하지 않은 채 '不義(injustice)'에 대한 강력한 억제를 주장했다. 그는 '정의론'보다는 타인에게 상해(injury)를 입히는 불의와 그에 대한 분노 및 정당한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미스는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가지 기둥을 정의와 자혜(Beneficence)로 구분했다. 정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소극적인 덕목으로, 사회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며, 이를 어길 경우 처벌이 따른다고 보았고, 자혜는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적극적인 덕목으로, 권장되긴 하지만 강제로 요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정의는 사회라는 건물을 지탱하는 주 기둥이며, 자혜는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과 같다"라고 비유하면서, 사회라는 체계가 우호적 감정이나 사랑이 없어도 존속할 수는 있지만, 침해가 만연하면 필연적으로 사회는 붕괴한다고 보았다. 정의는 사회를 유지하는 기초 질서이자 모든 것의 근간이라고 단언했다.

누군가 상해를 입으면, 상해는 반응을 일으키며, 첫 반응은 분노(resentment)이고, 이어 보복 및 처벌 욕구가 뒤따른다. 따라서 법과 정치 문제는 본질적으로 상해와 그로 인한 분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더 이상 분노나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이미 사망한 사람이 입었던 상해에 대해서도 우리는 공감할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이 스스로 복수를 요구할 수 없더라도, 우리는 그의 복수 욕구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분노는 우리의 분노가 되며, 타인의 처벌 욕구는 우리의 욕구로 내면화된다. 죽은 사람이나 타인의 감정을 이렇게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도덕적 공동체(moral community)를 형성한다.

스미스는 또한 억울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에게는 가해자를 부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허가권'이 주어진다고 설명한다. 가해자에게 일정한 해를 가할 수 있는 정당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에게 부여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스미스는 정의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가 분개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처벌되는 미덕"으로 이해했다. 스미스의 정의는 "남에게 해로운 짓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덕목"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정의의 모든 규칙을 지킬 수 있다"고 하여 정의를 소극적인 덕목으로 파악했다. 이 점에서 '정의'는 능동적으로 선을 베풀어야 하는 '자혜'와 구별된다.

스미스는 우리를 해친 사람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처벌하지 않으면 사회가 철저히 분열될 수 있으며, 사회는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분노라는 사실을 간파하였으며, 사회 유지에는 분노의 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만 스미스는 분노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경고하였다. 분노가 잘못되거나 과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실제 잘못에 비례하지 않는 분노를 피해야 한다. 이를 판단할 주체가 바로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다. 공정한 관찰자는 사건을 단순히 방관하지 않고, 그 무게와 정당성을 적절히 평가할 권한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때, 공정한 관찰자가 피해자의 분노에 공감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분노가 된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으로 연결되고, 판사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법을 집행하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스미스의 정의론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을 소극적 덕목으로서의 '정의', '불의'에 대한 공감, '공평한 관찰자'와 법관의 중립성, 재산권 보호와 계약 준수, '규칙' 중심의 통치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스미스가 꿈꾼 법치사회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되, 서로를 해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공정한 심판'이 있는 운동장, 즉 공정한 운동장(fair playing field)으로서의 사회였다.

차별적 제도, 세습적 빈곤, 성별·인종·계층 간 격차, 기후 위기와 같은 집단적 책임 문제 등 '구조적 불평등(structural injustice)' 등 현대 사회의 중요 문제를 스미스의 정의론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미스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법과 정부의 일반 원칙이 변한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으므로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그가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는 원칙은 여전히 법치주의의 핵심이며, 인권 개념의 최소 기준과도 연결되고,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정당화하는 최소 도덕 원리이다. 스미스는 '최소 정의(minimal justice)이론'의 선구자임이 분명하며, 분노가 결핍된 무관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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