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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유럽에서 독일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산업, 조직, 성실, 장인정신 같은 단어들이 그 비교를 떠받친다. 그런데 일본이 정서적으로 동경해 온 서양은 꼭 독일만은 아니다. 일본 대중문화의 서랍을 열어보면, 파리의 로망과 런던의 동경이 겹겹이 쌓여 있다. 프랑스는 '세련됨'의 상징으로, 영국은 '전통과 품격'의 아이콘으로 소비된다. 애프터눈 티, 트위드 재킷, 고풍스러운 대학도시, 그리고 '신사적 유머' 같은 이미지가 하나의 패키지로 유통된다.
이 상상의 유럽은 때로 과장되지만, 동시에 일본이 '어떤 사회가 되고 싶은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섬나라 일본은 영국의 해양성, 의회제, 공교육의 전통에서 근대 사회의 작동 방식을 읽어내려 해 왔다. 동경은 결국 타자를 통해 자기 문제를 푸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영국 사랑'은 취향이면서 동시에 교육 전략이다.
그 동경은 취향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1988년에 설립된 비교적 젊은 학교인데, 설립 4년 만인 1992년부터 영국 켄트대학교 안에 '초서 컬리지'를 운영해 왔다. 학교가 막 숨을 고르기도 전에 해외 거점을 만든다는 것은 도전이라기보다 모험에 가깝다. 재정, 인력, 커리큘럼, 안전, 현지 파트너십까지 그 모든 것을 30여 년 넘게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영국을 좋아한다'는 말보다 훨씬 무겁다. 애정이 제도와 예산과 관습으로 굳어졌을 때, 그것은 문화가 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4주다. 길 것 같지만 짧고, 짧을 것 같지만 길다.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과 동네 산책으로 몸을 풀고, 곧장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어 수업을 몰아친다. 하루 종일 영어로 수업을 듣고 말하려고 애쓰는 첫날은, 학생들에게 일종의 '두통이 동반된 각성'이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목표가 생겼다. 켄트대학교로 이동해 현지 대학생을 직접 인터뷰한다. "무엇을 좋아하나요, 쉬는 날엔 뭘 하나요" 같은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실제 사람에게 던질 때 영어는 교과서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뇌가 언어를 '공부'가 아니라 '생존'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둘째 주에는 영국의 학교를 방문한다. 예비교사들이라면, 교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바뀐다. 우리 학생들은 일본사 강의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서예 체험, 종이접기, 그리고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가르치는 세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가르치러 가는 순간, 배우는 쪽은 오히려 우리다. 아이들이 질문하는 방식, 교사가 교실을 운영하는 리듬, 학교가 지역과 연결되는 방식이 눈에 들어온다.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가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셋째 주에는 옥스퍼드·케임브리지·런던으로 2박 3일의 짧은 이동이 있다. 관광이 아니라 관찰의 시간이다. 명문대의 건물과 박물관의 동선, 공공공간의 안내판, 버스 정류장에 붙은 일상의 규칙들. 문명은 거창한 이념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작은 장치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주,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는가'를 발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어 실력의 점수표가 아니다. 타인의 사회를 읽고, 자기 사회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의 획득이다. 일본에서 교사가 될 이들이 '국제화'라는 단어를 미래의 과제로만 두지 않고, 지금 자기 몸으로 통과했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물론 영국 사랑에는 함정도 있다. 동경은 종종 현실을 납작하게 만든다. "영국은 늘 품격 있고 질서정연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실제 생활의 불편과 충돌할 때, 실망이 분노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의 역할은 '환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분해'하는 데 있다. 존경은 필요하지만, 자기 비하로 이어지는 숭배는 필요 없다. 좋아한다면, 더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낯선 사회의 장점을 기록하는 만큼,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균열도 함께 읽어내는 눈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현대 영국을 깊게 관찰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첫 주만으로도 일본이 영국을 얼마나 사랑해 왔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제도와 교육으로 구현되는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한 나라의 국제화는 대단한 구호보다, 이렇게 한 세대를 통째로 낯선 세계에 던져보는 실천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 실천이 '동경'으로 끝날지 '학습'으로 이어질지는, 이제 이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가 어떤 교사가 되느냐에 달려 있다.
송원서 (일본 슈메이대학교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