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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 안일한 시험차량 관리에… 육군 무인車 사업 장기표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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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현 국방전문기자

승인 : 2026. 04. 02. 17:49

한화에어로 단독 성능평가 완료 후폭풍
한화, 승인받은 1대 반출뒤 1년여 미반납
현대로템 "SW 튜닝 후 성능 향상" 주장
평가불참 속 단독 협상땐 법적대응 예고
방사청, 재공고 검토에도 책임론 커질듯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무인차량 아리온스멧. 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다목적무인차량 '아리온스멧'. /제공=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_HR-셰르파
현대로템의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 /제공=현대로템
대한민국 육군의 미래 전투체계를 상징하는 '아미 타이거 4.0(Army TIGER 4.0)'의 핵심 병기인 다목적 무인차량(MUGV) 도입 사업이 8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자원 급감 시대에 보병의 '눈과 발'이 되어 탄약 수송과 감시·정찰을 수행할 첨단 무기체계가 업체 간의 사활을 건 패권 다툼과 방위사업청의 매끄럽지 못한 행정 처리로 인해 끝없는 수렁에 빠져든 형국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1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사 무인차량 '아리온스멧(Arion-SMET)'의 성능확인평가를 단독으로 완수했다고 발표하면서 표면화됐다. 최고속도와 항속거리 등 6개 항목의 실물 평가를 마친 한화 측은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경쟁사인 현대로템의 반발은 거세다. 현대로템은 이번 평가를 "공정성이 완전히 무너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규정하고 평가 불참이라는 배수진을 쳤다. 로템 측은 방사청이 한화와의 단독 협상을 강행할 경우 '낙찰자 선정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 등 유례없는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갈등의 핵심 쟁점은 방사청의 '시제기 관리 부실' 의혹이다. 현대로템(이하 로템)은 사업 초기 한화 측이 제출한 시험용 시제품 2대 중 1대를 전시회 출품 등을 이유로 외부로 반출한 뒤 1년 넘게 반납하지 않았다는 점을 정조준하고 있다. 비록 방사청의 승인을 거친 절차였다고는 하나, 로템 측은 "무인차량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나만으로도 기동 특성과 험지 주파 능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플랫폼"이라며 "반출 기간 중 시험 환경에 최적화된 이른바 '답안지 수정'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무인 지상차량(UGV)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하드웨어가 동일하더라도 소프트웨어 튜닝에 따라 성능 수치가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로템의 지적은 기술적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화의 아리온스멧이 성능평가를 통과한 것은 팩트지만, 경쟁 체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계약을 밀어붙였다가는 '특혜 논란'과 대규모 소송전이라는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방사청 내부에서는 '유찰 처리 후 조건을 재정비한 신규 공고'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입찰 조건을 원점에서 재설계해 두 업체를 다시 공정한 링 위로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논란이 된 시제품 관리 기준과 소프트웨어 통제 규정을 대폭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역시 지난달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업체의 의도적인 사업 지연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언급하며 고의 지연 시 페널티 부과 등 강경한 입장을 비치기도 했다. 방사청의 최종 판단은 이달 중순 이후 나올 전망이다. 이번 사업은 초기 양산 규모 496억원으로 시작하지만, 향후 해병대 확대와 드론·AI 체계와의 통합을 고려하면 수천억 원대 시장의 '표준'을 선점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업체들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문제는 2018년 소요 제기 이후 8년째 사업이 공전하면서 정작 현장의 육군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미 타이거의 핵심인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 구현이 늦어지면서 전력 공백이 가시화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육군 관계자는 "병력 자원 급감 시대에 무인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의 행정 미숙과 업체의 이기주의가 뒤섞여 국가 안보의 첨단화 시계만 멈춰 세우고 있다"고 성토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입찰 갈등을 넘어 'K-방산'의 체계 통합 능력과 행정 투명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됐다. 방사청이 공정성과 신속한 전력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세계 4대 방산 강국'이라는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필현 국방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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