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이후 법주사서 다비식...민주열사묘역에 영면
|
대한불교조계종과 시민사회가 함께 마련한 영결식에는 고인과 인연을 맺었던 불교, 종교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 인사와 신도 등이 참석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은사 탄성스님의 제자들의 모임인 탄성문도회 회장 도공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주경스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공동 장의위원장을, 법주사 주지 정덕스님이 호상(護喪)을 맡았다.
도공스님은 영결사에서 "스님은 말에 거침이 없고 행동에 물러섬이 없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던 손길 같은 스님"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40년 전 해인사에서 고인과 인연을 맺은 염무웅 전 국립한국문학관장은 "그는 76년 인생 가운데 52년을 승복 입은 비구로 지냈으나 그의 삶은 승복의 격식에도 사찰 건물의 고고함에도 갇히지 않았다"며 "그는 자유인이었다"고 돌아봤다.
기본선원 조실 영진스님은 추도사에서 1994년 종단개혁을 위한 승려대회 당시 고인이 모습을 회고하며 "가사를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며 종단개혁을 위해 펼친 사자후는 종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다.
영결식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영산의 춤'이라는 시로, 소리꾼 장사익은 노래로 고인을 배웅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 세월호 유가족 정부자씨 등도 고인의 마지막 길에 인사를 건넸다.
영결식 후 고인의 법구(法軀·스님의 시신)는 출가 본사인 충북 보은군 법주사로 운구됐고 이후 다비식이 엄수됐다. 고인은 49재 후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묘지의 민주열사묘역에서 영면에 든다.
고인은 지난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채로 구조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원적에 들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