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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인터뷰①]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 “로봇·사람 경계 지키기 쉽지 않아”

[AT인터뷰①] ‘어쩌면 해피엔딩’ 전미도 “로봇·사람 경계 지키기 쉽지 않아”

기사승인 2017. 01. 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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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잡은 손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모두 저물어 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해, 사랑하려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을 거야. 니 어깨에 기대어 네게 안기어 너를 보며 행복한 그런 나야. 얼만큼이든 내게 주어진 그만큼 나 사랑할게. 니곁에서 나 멈출 그때까지만.”


함께 제주도로 떠난 헬퍼봇6 ‘클레어’와 헬퍼봇5 ‘올리버’는 여행 중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이별 직전 이 같은 가사를 담은 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절절하게 부른다. 로봇들의 사랑이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심장이 없는 로봇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예감하며 슬픈 감정을 감출 수 있을까. 여러모로 극을 보지 않고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설정과 캐릭터들로 구성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피아노·현악기 등 6인조 라이브 연주와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를 통해 버려진 두 로봇의 소중한 감성을 아날로그적으로 풀어냈다. 극중 똑똑하고 활발하지만 냉소적 성격을 지닌 ‘클레어’를 연기하는 배우 전미도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사랑스럽고 귀여운 캐릭터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전미도가 대본도 보지 않고 믿고 선택한 작품, 전미도에게 직접 ‘어쩌면 해피엔딩’ 관련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다.

- 작품 선택 계기는 무엇인가.
“박천휴 작사가, 윌 애런슨 작곡가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작품에서 같이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작업한 게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두 사람이 ‘소재를 개발해서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대본도 없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두 사람 믿고 하겠다고 했다.”

- 대본이 없는 상태에서 선뜻 출연하겠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 신뢰가 대단한 듯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로봇들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 거라는 구상은 있었다. 그런데 되게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든 로봇이라는 자체가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했다. 그들이 만들어 낼 거에 대해서 신뢰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것 같다.”

-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 작품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내가 옆에서 봐도 그렇고 두 사람이 정말 소통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작품 만드는 데 있어서 워낙 두 사람이 대화를 많이 나누다보니까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온다. 심지어 윌은 외국사람이라서 한국 가사의 의미 등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음악이랑 가사의 정서가 잘 맞아떨어진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번역돼오거나 할 때 음악이랑 가사가 잘 안 맞는 경우가 있는데 두 사람한테는 그런 게 없이 오히려 더 좋은 시너지를 내니까 그 점이 가장 좋은 것 같다.”

- ‘올리버’와 ‘클레어’ 모두 굉장히 사랑스러운 캐릭터인데 대본을 읽었을 때 ‘클레어’의 첫인상은 어땠나.
“첫인상이 거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캐릭터하고 비슷하다. 글로만 읽어도 새침때기 같기도 하면서 똑똑한 척하면서 약간 상처가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겠더라. 톤이라든지 동작 모두 처음에 느꼈던 감정들 그대로 지금까지 공연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본에서부터 이미 그런 느낌을 내가 받았던 것 같다.”

- 트라이아웃 공연부터 본 공연까지 함께하면서 애착이 남다를 것 같다. 특히 초연인 만큼 배우로서 창작과정에 참여하기도 했을 텐데 트라이아웃에서 본 공연으로 오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
“사실은 이미 트라이아웃 때 음악이나 대본이 완성도 있게 나온 상태였다. 보통은 조금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서 본 공연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작품은 그럴 것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크게 바뀐 건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면 어떻게 느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감정에서 감정으로 넘어가는 사이들을 매끄럽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영상 촬영·편집=이홍근 기자

- 걸음걸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진짜 로봇 같아서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 그런데 또 똑똑하고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라서 눈빛이나 말투 같은 경우는 성숙한 사람 같고.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나. 
“아무리 로봇 연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이다 보니까 정서에 집중되면 될수록 사람에 가까운 모습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다시 ‘아 맞아 쟤들이 로봇이었지’라고 상기시킬 수 있는 부분들을 장치적으로 심어놨다. 처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당황한다든지, 너무 기뻐한다든지 이런 부분들을 다시 로봇으로 보일 수 있게끔, 나도 돌아갈 수 있게끔 장치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있다. 사람에 가까운 로봇이다 보니까 그 경계를 지키는 게 쉽지 않더라. 지금도 공연하면서 계속 그 경계를 찾아서 가고 있는 것 같다.”

- ‘올리버’를 연기하는 세 배우(김재범·정문성·정욱진)의 디테일이 다 달라서 연기 호흡도 다를 것 같다. 세 ‘올리버’의 특징은 무엇이며 함께 연기할 때 각각 어떤 점에 신경을 쓰게 되는가.
“세분 진짜 다 다르다. 물론 나와 같은 캐릭터를 하고 있는 이지숙과 나도 다르겠지만. 다르다보니까 더 상대방한테 집중하려고 하는 것 같다. 만날 똑같은 호흡이 아니라 다른 호흡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그걸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반응하려면 더 들으려고 하는 것 같다. 셋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정욱진은 아무래도 좀 더 활기가 있다. 제일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 늘 새롭게 뭔가를 준비해오곤 해서 그게 또 재미있더라. 트라이아웃을 같이 했던 배우라 그때도 호흡이 너무 좋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새로운 걸 가지고 와도 언제나 호흡 맞추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정문성은 사실 제일 집중이 잘되는 배우다. 문성 올리버는 바깥으로 드러내기보다 속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더 섬세하게 귀 기울여서 듣고 주고 하지 않으면 드라마를 같이 가져가기가 어렵다. 반면 잘 맞았을 때는 오히려 마지막에 감동이 더 진하게 온다. 김재범은 워낙 잘하는 배우라 아무 생각 없이 툭툭 해도 공연이 쫙 가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 좋아하는 장면이나 넘버가 궁금하다.
“올리버와 클레어 둘이서 제주도에 가기로 약속하고 각자 방에 돌아가서 방에 대고 하는 노래가 있다. ‘Goodbye, My Room’이라는 넘버인데 나는 그 음악이 너무 좋다. 근데 바로 직전에 떠나자며 신나서 노래하고 나서 방안에 들어가 조용히 노래를 하려니까 호흡정리가 잘 안 된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잘 부르고 싶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못 부르고 있다. 너무 좋아하는 노래인데 잘 안되니까 속상하고 ‘끝날 때까지 이 노래를 진짜 잘 불러봐야지’ 하고 나름의 목표를 세워두고 있는 노래다. 두 로봇이 여행을 떠나는 과정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고 그게 나중에 깊어져서 헤어질 것에 대한 상처가 두려워 기억을 지우고 이런 내용이지 않나. 그 과정에 각자의 방에 인사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사랑스럽더라. 그 넘버의 선율이 특히나 너무 좋은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훨씬 더 퀄리티를 높여주는 느낌의 음악인 것 같다.”

- 개막한지 한 달이 지났다. 공연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실수담 같은 게 있었나.
“우리들만 아는 실수들인데 가사를 좀 틀린다거나 얼마 전에 모 배우는 가사가 잘못 나오는 바람에 스스로 작사를 하셨더라. 상대배우는 참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건너 듣던 배우가 무대에서 터져졌다는 얘기도 있다. 보통 우리가 아는 실수 때문에 우리만 아는 웃음으로 웃는 경우도 있다. 모텔 신에서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든지, 너무 웃겨서 얼마 전에는 정욱진 등짝을 세게 때렸다.(웃음)”

- 이 작품을 기다려 온 관객들, 여러 번 보는 관객도 많겠지만 처음 볼 예비 관객을 위해 관전 포인트 좀 짚어달라.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랑 얘기가 아니라 로봇들의 얘기라는 것을 알고 오시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그 로봇들이 알 수 없는 화학작용을 통해서 입력돼있지 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그 감정이 경험을 통해 변해가는지와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꼈던 감정들을 로봇들을 통해서 제3자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를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영상 촬영·편집=이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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