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태희 | 0 | 우태희 연세대학교 특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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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에너지 블록체인 국제콘퍼런스에 다녀왔다. 40개국 5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 블록체인이 전력거래의 인터넷(IoE)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록체인은 거래내역을 묶어 암호화하고 연결하여 분산관리하는 기반기술이다. 전력거래에서 블록체인을 주목하는 이유는 스마트계약이라는 옵션을 통해 프로슈머들의 불특정 다수(1대N)간 전력거래를 신속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과 같은 제3자의 중개 없이도 프로슈머끼리 거래할 수 있고, 계량기와 컴퓨터가 알아서 자동거래와 정산을 한다. 스마트그리드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조절하고, 송배전 손실 최소화 등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블록체인 기반 위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이번 행사에서 몇 가지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첫째, 에너지 블록체인의 오픈 소스(Open Source)화이다. 참석자들로부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블록체인 기반 전력거래를 가능케 하는 오리진(Origin)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비영리기관인 에너지웹재단(EWF)이 제작하여 100% 오픈소스 인프라를 지향하고 있다. 서로가 전력거래의 윈도를 개발하려고 경쟁하는 있는데 갑자기 소스가 공개되는 리눅스가 발표되어 충격을 준 것이다. 독일에서 전력거래 블록체인 프로그램을 처음 상용화한 에너체인(Enerchain)은 소스공개 요청에 시달리게 되었고, 프로그래머와 소비자의 무언의 압력은 앞으로 오픈소스화를 더 촉진할 전망이다.
둘째, 블록체인 서비스의 플랫폼(Platform)화이다. 영국의 에너지마인(Energi Mine)이란 기업은 에너지를 절약한 소비자들에게 토큰으로 보상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주의 파워레저(Power Ledger)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블록체인 기반 마이크로 그리드를 건설하고 있다. 미국의 그리드플러스(Grid Plus)는 금년 중 블록체인 플랫폼이 탑재된 발전소 장비들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 플랫폼 회사들은 최근 성공적인 암호화폐공개(ICO)로 2억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해 앞으로 더 공격적으로 플랫폼시장 개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셋째, 블록체인이 전력거래 이외 다른 에너지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탄소배출권 거래이다. 스위치 토큰(Swytch Token) 등 암호화폐에는 총량이 있어 최대 배출허용량을 역산해서 정의할 수 있다. 또한 배출권거래는 이산화탄소 상당톤(tCO10-eq) 이라는 공통단위를 갖고 있어서 탄소시장과 블록체인은 함께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 공통의 거래장부를 통해 각종 거래를 투명하게 관리하여 거래비용을 낮추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감축량 더블 카운팅 등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앞으로 우리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사업기회로 눈여겨보아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금융 분야에서 처음 출발한 블록체인은 이제 보건·의료, 유통·물류, 해운, 전자상거래, 정부조달, 에너지 등으로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아직은 도입 초기 단계지만 블록체인이 더 확산된다면 에너지 시장구조를 변화시키고, 신재생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소규모 전력생산업, 소규모 전력중개업, 전기자동차 충전업 등 새로운 업종이 생기고 프로슈머시대가 열린다면 에너지 블록체인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본다. 4차 산업혁명 어느 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우리나라가 블록체인만큼은 주도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개선과 여건 마련에 앞장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