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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역사의 아픔 달래주는 장쾌한 풍광에 ‘심쿵’...거제 계룡산

[여행]역사의 아픔 달래주는 장쾌한 풍광에 ‘심쿵’...거제 계룡산

기사승인 2018. 10. 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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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거제 계룡산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룡산은 가을 천혜의 전망대가 된다. 볕을 받아 오글거리는 바다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부려져 있는 풍경이 장쾌하고 또 평온하다. 누렇게 변해가는 들판은 마음을 참 넉넉하게 만든다.


가을, 하늘은 푸른데 마음은 헛헛해지는 계절. 경남 거제도 한 복판에 솟은 계룡산(566m)에 오르면 헛헛함이 조금 채워진다. 계룡산은 정상의 암봉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 산이 용틀임을 해 발치의 구천계곡이 생겼다는 전설도 걸쳤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계룡(鷄龍)이다. 가을날 이 산은 최고의 전망대가 된다. 정상에서 느닷없이 펼쳐지는 장쾌한 풍광에 가슴이 뛴다. 흐르는 치열한 역사는 이 멋진 풍경의 소중함을 시나브로 일깨운다. 역설적이어서 더 애틋한 계룡산이다.
 

여행/ 거제 계룡산
계룡산 고자산재 주변으로 전망데크와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계룡산에서는 눈이 호강한다. 계룡산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다. 거제도의 한 가운데 솟아 있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거제 도심의 야경과 서쪽으로는 거제만의 넓은 들녘과 바다가 보인다.

특히 바다 쪽 전망이 압권이다. 발치에서는 한려해상이 볕을 받아 오글거린다. 능선처럼 늘어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바다와 뒤엉킨다. 산달도를 비롯해 경남 통영의 한산도, 용초도, 추봉도, 그리고 미륵산까지 바라보인다. 돈 주고도 못 볼 작품이 여기 있다. 누렇게 변해가는 들판과 무구한 바닷가 마을은 또 마음을 어찌나 넉넉하게 만드는지. 욕심을 내려두고 사방을 둘러보니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다. 공기(空氣)가 맑은 이 계절에는 빛깔도, 감상도 더욱 또렷해진다. 이러니 여운이 오래가고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이 풍경을 곱씹으면 팍팍한 세상살이도 버틸 수 있다.
 

여행/ 거제관광모노레일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계룡산 정상 근처까지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왕복 약 3500m의 국내 최장 모노레일이다.



계룡산은 정감록에 나오는 이른바 속세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였다. 선계(仙界)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나면 이 사실에 동의할 수 있다. 신선이 심고 길렀다는 무밭, 신선이 놀던 장기판 바위가 있었다는 전설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신라의 의상대사는 이 풍경을 병풍 삼아 계룡산에 암자를 짓고 수도를 했단다. 1950년대 중반쯤 이곳에서 금동불상이 발견됐다.

사위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역사는 치열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계룡산 동쪽 자락에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설치된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둔 유엔군과 국군은 작전이 성공하면 많은 포로들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큰 포로수용소가 필요했다. 거제도는 육지와 떨어져 있어 경비가 편했다. 섬이 커서 물이 충분하고 식량도 재배할 수 있었다. 대규모 포로수용소가 들어앉을 최적의 장소였다. 이렇게 세워진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당시의 포로수용소들 가운데 가장 컸다. 한 때 17만명 이상의 포로들이 여기서 생활했다. 숱한 갈등이 존재했다. 반공과 친공의 이념적 대립, 제네바협정에 따라 국군보다 나은 대우를 받던 포로들과 국군들 간의 다툼도 있었다. 하루하루 치열했던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며 폐쇄됐다.
 

여행/ 거제 계룡산
계룡산 정상부근의 유엔군 통신소 잔존 건물.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상황 등을 보고하던 곳이다.
여행/ 거제계룡산
계룡산 정상부근에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잔존 유적들.


당시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 자리에 유적공원(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조성됐다. 경비대장 집무실, 경비대 막사 등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의 일부 건물들을 비롯해 한국전쟁의 발발과 진행과정, 포로의 생포와 수송과정 등과 관련한 자료와 유적 등을 볼 수 있다. 천천히 살피다보면 치열했던 그날이 눈앞에 선해 가슴 먹먹해지지만 뛰어 노는 아이들의 천연한 고함소리가 평화의 미래를 알리는 듯 느껴진다.

계룡산 정상 근처 고자산재 음달바위 인근에도 당시의 흔적이 오롯하다. 유엔군의 통신소 건물들의 잔해가 거기 있다. 수용소 안에서 발생했던 사건 등이 이곳을 통해 극동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로 보고됐다. 음달바위 주변에는 전망데크가 있다. 능선을 따라 풍경을 음미하기 딱 좋을 만큼 길이의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바라 본 발치의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무리가 전쟁의 상흔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여행/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당시 설치된 포로수용소 가운데 가장 컸다. 17만여명의 포로가 이곳에서 생활했다.


계룡산에 오르기가 수월해졌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고자산재까지 모노레일(거제 관광 모노레일)이 운행한다. 길이가 왕복 3540m의 국내 최장 모노레일이다. 1분당 75m의 평균속도로 약 30분을 가야 정상에 닿는다. 최고 경사각이 37도에 이를 만큼 아찔한 코스도 있다. 숲을 지나고 거대한 바위를 돌아가는 재미가 있다. 평일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모노레일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통신소를 연결하며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잘 된 개발이다.

거제도는 이름난 관광지다. 해금강, 바람의 언덕, 여차~홍포 해안, 신선대, 공곶이, 그리고 그 유명한 외도와 ‘동백섬’ 지심도까지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대부분 해안가나 섬이다. 다시 거제도에 간다면 계룡산은 한번 올라본다. 원래 정상 능선 따라 피는 산철쭉이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하늘이 파란 가을에 찾아도 본전은 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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