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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러시아 신문보도 최초 공개

국가기록원,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러시아 신문보도 최초 공개

기사승인 2019. 05. 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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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 의거 전후 행적부터 판결,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상세 보도
이토 히로부미 죽음에 대한 조선 내 반응까지 다루고 있어 사료적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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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니 보스톡지(紙)의 1909년 10월 15일 기사 내용. ‘이토 공작 암살’이라는 제하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국가기록원 제공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일제의 첫 심문부터 사형집행까지 안중근 의사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과 발언 등을 소개한 러시아 신문기사 내용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등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한다고 밝혔다.

공개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5년 독립운동과 우리 동포 관련 기록물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대상으로 기획·수집하던 중 발굴된 것으로,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의 안 의사 관련 보도이다.

그동안 안중근 의사 관련 러시아 신문기사가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었지만 러시아 극동지역 여러 신문의 관련 기사를 망라해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자거우(蔡家具) 역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 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달리니 보스톡지는 의거 이틀 뒤인 1909년 10월 28일자에 ‘26일 아침 9시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공작(당시 조선 통감)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쁘리 아무리예지 11월 2일자는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을 얻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라는 안 의사의 진술을 실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지 11월 4일자는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한 안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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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 아무리예지(紙)의 1909년 10월 20일 보도 내용./국가기록원 제공
쁘리 아무리예지 11월 2일자는 10월 24일 정오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가는 차이자거우 우편열차 정거장에서 안중근·우덕순·조도선이 내리는 것부터, 다음날 아침 거사를 위해 안 의사가 하얼빈으로 떠날 때 서로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형식으로 게재했다.

신문들은 안중근 의사가 현장을 지휘하는 러시아 장교에 의해 기차역으로 옮겨진 뒤 감옥으로 이송되는 과정도 상세히 보도했다. 쁘리 아무리예지 11월 6일자는 1일 있었던 이송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안중근·우덕순·조도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안중근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열차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이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했다.

또한 신문은 안중근 의사의 법정진술과 사형선고 당시의 상황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쁘리 아무리예지 1910년 2월 27일자는 사형을 선고한 2월 26일 재판 상황에 대해 보도했는데,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 안중근의 어머니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와 관련된 보도기사가 이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 1910년 4월 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했다.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 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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