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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왜 ‘사오정’일까

[칼럼]왜 ‘사오정’일까

기사승인 2020. 05.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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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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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국내 고용 시장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기업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깨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달리 한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강한 애사심은 상당수 사라졌다. 회사가 더 이상 고용을 정년까지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오륙도(56세까지 직장 다니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 이라는 유행어도 사회적으로 급속히 퍼졌다. 앞서 유행어들은 당시 어두운 시대 상황을 대변했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까. 필자가 살펴보니 현재도 ‘사오정’ ‘오륙도’ 같은 유행어는 현재진행형으로 유효했다. 특히 전자와 통신업처럼 사업 속도가 빠른 IT업종일수록 이런 현상은 뚜렷했다. 이들 업종에서 50대 이상 비율은 10%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의 경우 40대도 회사에 남아 남기가 쉽지 않아졌다.

여기서 궁금한 대목이 있다. 왜 알게 모르게 ‘45세’를 전후로 많은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퇴직기준이 되었는지 하는 점이다. 며칠 전 모그룹 계열사에서도 ‘만45세’ 이상 기준으로 명예퇴직 신청자를 받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것은 이 그룹만 해당되는 특수한 얘기는 결코 아니다.

통상적으로 45세 정도가 되면 지식과 경험 등이 많이 축적돼 회사 차원에서 보면 활용가치가 높은 인적 자원에 속한다. 그런데도 50세도 안 되는 40대 중후반 즈음에 회사를 떠나가게 하는 것은 기업 전력상 상당한 손실이 아닐까.

이 부분과 관련해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나이’와 ‘창조성’과의 상관 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은 좀 달랐다. 나이와 과학적 재능 간 관련 메커니즘을 연구한 노스웨스턴 대학의 벤자민 존스 교수가 대표적이다. 벤자민 존스 교수의 연구 결론을 한마디로 응축해보면 ‘노벨상 수상자 및 위대한 과학자는 35세~40세에 과학적 창조성이 최고 절정기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35~40세를 기점으로 과학적 창조성이 극대화 되다가 그 이후 서서히 감퇴한다는 의미가 크다.

물론 앞서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전문가는 44세를 전후로 개인의 창조성이 최고점에 다다른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개인별 창조성이 최고 절정기를 맞이하는 시점은 아무리 늦춰도 45세 이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 셈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마다 편차가 있지만 일반 직장에서는 보편적으로 40~45세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동안 자신의 쌓은 경험과 지식에 의존하려는 습성 때문에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려는 도전보다는 기존 관행과 선입관을 가지고 판단하려는 성향이 다소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쉬운 예로 회사에 갓 입사한 사원이 참신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마치 꼰대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퇴짜를 놓기 십상일 수 있다. 조직에서 이런 일이 빈번히 발생하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보다 자신의 안위(安危)를 먼저 생각하며 기존에 해왔던 방식대로 안전하게 가려는 현상이 만연해진다. 이것이 조직이 서서히 망가지는 원인 중 하나다.

실제 전자·통신 등 사업 속도가 빠른 IT 관련 업종일수록 45세 이전 인력을 적극 선호하는 경향은 확연하다. 자칫 6개월만 뒤떨어져도 시장에서 도태되기 쉽다. 화학, 건설, 자동차 업종 등은 IT 보다는 더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는 편에 속한다.

특히 IT 업체들은 ‘C×P×S’ 성공 방정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C는 창조성(Creativity), P는 실용성(Practicality), S는 스피드(Speed)다. 즉 새롭고 창의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격과 활용 측면에서 실용적인 상품을 얼마나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러한 성공 방정식 값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IT 업계 경영진은 개인별 창조성이 최대치에 다다르는 40~45세 이전 젊은 인력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 운영임을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월이 갈수록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회사도 성장하지만 직장인의 생존율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지금의 과거의 ‘오륙도’, ‘사오정’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사출기(40세부터 회사를 떠나야(出) 하는 시기) 혹은 ‘삼팔선(38세부터 퇴직 기준선)’ 등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직장인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강한 노조를 통해 퇴직 연령을 몇 년이라도 더 늦춰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창의성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발전을 꾀하는 일이다. 창의성의 최고 절정기가 지나더라도 부단히 노력하면 70세가 되어도 웬만한 젊은 사람 못지않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45세 이후 정년까지는 창의성이 이전보다 떨어지다가 은퇴 이후에 다시 올라가는 경우가 많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은퇴 이후 숲 해설가, 문화유적해설가, 각종 자원봉사 혹은 저술활동 등 제2의 새로운 일과 취미 등을 위해 무언가 부지런히 배우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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