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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를 꼽으라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삼성물산을 들 수 있다. 사실상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 중에는 이 부회장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있다.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에게 시선이 집중돼 이 사장의 경영능력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사장 역시 오빠 못지 않은 경영자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 부회장이 리스크에 노출될 때 가족 가운데 경영자의 역할로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론된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이 사장이 차지하는 삼성물산 지분은 각각 17.48%, 5.6%나 된다. 이 사장과 지분 비율은 같지만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빠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제외하면 삼성물산을 지배하는 건 오너일가 중에서는 이 둘 뿐이다.
삼성물산이 중요한 이유는 오너일가가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게 하는 컨트롤타워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을 지배하는 회사다. 삼성생명은 삼성증권·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축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지분과 더불어 삼성전자 지분 5.0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을 지배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51%까지 더해서 삼성전자 지분 13.56%를 좌우할 수 있다. 시가총액이 325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다보니 13%대 지분이면 경영권을 지배하기에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전세계 기업 중 매출 상위 15위를 차지한 글로벌 기업이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 20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오늘날 삼성의 위상을 있게 했다.
◇이부진 사장의 재조명…경영자로 자질 뛰어나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로만 여겨졌던 이 사장이 본격적으로 조명된 것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시작되면서다. 2017년 1월 박영수 특검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이 사장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내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란 소문이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왔다. 삼성물산의 지분을 일정 수준 소유한 이 사장이기에 우호세력을 모을 경우 이 부회장을 대신할 수 있다는 추측이 가미된 내용이었다. 이후 호텔신라 주가가 급등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재계에선 이 사장이 조명받은 이유를 단순 지분관계에서만 찾지 않는다. 이 사장은 이건희 회장 자녀 중 가장 경영자의 자질이 있는 사람으로 꼽혀왔다. 이 사장은 2001년 8월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으로 입사한 이래 줄곧 호텔신라 경영에 참여했고, 2010년 12월 호텔신라 사장에 취임한 후 호텔사업 부문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경영능력을 입증해왔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가장 닮은 자녀로 알려져 있다. 지근거리에서 이 사장을 보좌한 이들은 “신중하고 분석적이면서도 한번 결정하고 끝까지 해내는 추진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경영스타일은 부친인 이 회장과 닮은 꼴이다. 추진력과 분석력이 뛰어났던 이 회장은 자신과 닮은 이 사장을 많이 총애했다. 그는 “(이 사장이) 아들이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란 말을 자주했다고 전해진다.
이 사장은 경영 욕심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호텔신라 대표이사인 이 사장은 2015년 주주총회 때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나타나 화제가 됐다. 다른 직함으로도 회사를 경영할 수 있지만 이 사장이 등기이사인 대표이사를 고수하는 데에는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이 사장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부회장 대신 경영권 장악?…“근거 없는 추측”
이 사장은 과거부터 오빠인 이 부회장과 경영권을 다툴 것이란 오해를 많이 샀다. 삼성 비자금 관련 내부고발을 한 김용철 변호사는 그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이학수 삼성물산 전 고문, 김인주 삼성전자 고문 등 당시 삼성 실세들이 이 사장과 이 부회장 간에 경영권 다툼이 생길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서술했다.
당시 삼성 간부들의 우려와 달리 오늘날 남매 간 경영권 다툼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미 이 부회장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탄탄히 짜여져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다. 또한 이 부회장과 이 사장의 관계는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경쟁자 관계가 아닌 좋은 오누이 사이라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한진가 분쟁의 사례처럼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경영권을 다툴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수감됐을 때 이 시장은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만일 이 사장이 총수 자리를 차지하려는 뜻이 있었다면 당시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삼성물산 합병은 이미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결정해서 끝난 사안”이라며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한 이 부회장의 승계포기 선언으로 이 사장이 삼성전자에 손 댈 명분이 없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이 부회장이 경영권 세습이 문제의 근원이어서 자식에게 승계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다시 오너일가끼리 지분 경쟁을 벌일 명분이 없다”면서 “이 사장이 역할을 한다는 건 외신들의 억측”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