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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추적] “남성 권력연대의 견고함 때문에 권력형 성범죄 반복된다”

[뉴스추적] “남성 권력연대의 견고함 때문에 권력형 성범죄 반복된다”

기사승인 2020. 07. 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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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피해자를 중심으로 성범죄 용인하지 않는 사회 인식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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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김재련 변호사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와 여당이 A씨를‘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것에 대해 “언어의 퇴행”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의 법률대리인이다./출처=김 변호사 SNS 캡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고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거물 정치인들의 성추행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남성들의 정치적 연대와 남성 권력연대의 견고함이 성범죄 피해자보다 훨씬 우선시되는 사회문화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아주 사소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시장은 전직 비서 A씨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지 약 31시간 만인 지난 10일 새벽 서울 종로구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그와 관련한 성추행 고소 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여권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박 시장의 업적만을 부각하고 추모하는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형성했다. 앞서 안 전 지사,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달리 ‘가해자’와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을 촉발한 것으로 알려진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청각장애 학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소설 ‘도가니’의 저자인 공지영 작가 등 누구보다 이런 문제에 앞장섰던 여성 인사들도 눈치만 보며 일단 침묵하거나 박원숙 시장을 두둔했다. 마치 자신의 진영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앞장서서 눈을 감으려는 듯.

심지어 정부와 여당은 심지어 A씨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으로 칭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박 시장의 혐의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인데, 일각에선 ‘부적절한 대응이다’ ‘젠더 감수성이 퇴행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다’ 등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특히 A씨 측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명칭은 ‘언어의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15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만연하고 반복되는 이유로 △끊어지지 않는 성범죄자의 정치적 연대 △조직의 대의를 우선시하는 권위적 문화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인식과 처벌 등을 꼽았다. 특히 이들은 최근 안 전 지사 모친과 박 시장의 빈소에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문재인 대통령 등이 조화를 보낸 것에 대해 ‘남성 권력 연대의 견고함’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성범죄가 반복되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조직에는 조직과 반대되는 의견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들의 구제 요청 또한 묵살되기 쉽다”며 “오히려 이 같은 문제의 해답으로 ‘여성 비서를 뽑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시장 등의 빈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죽음 이후에도 누가 실세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의 권력 때문에 피해자는 폭로한 피해 사실마저 의심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승희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권력을 갖는 고위공직 자리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많고, 이들을 보좌하는 역할은 주로 여성이 맡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은 권력형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범죄자에게 화환을 보내는 등 정치적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착취 사건이 별 것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권력자의 성범죄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범죄를 용인하는 사회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강력하고 확실한 처벌과 피해자와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피해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억압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김 교수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의 운영자 손정우씨(24)는 겨우 1년 6개월의 징역형만을 선고받고, 최근에는 고법이 미국 송환조차 불허했다”며 “미비한 양형 기준역시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 분명한 책임과 처벌이 따른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피해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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