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는 "선행조건 완료…일단 대화하자"
정부 중재 고려해 최종 결정 미뤘지만
사실상 인수합병 파기 수순…정부 지원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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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이스타항공은 입장문을 내고 “주식매매계약서(SPA)상 선행조건을 완료했다”며 제주항공 측에 계약완료를 위한 대화를 요청했다. 이어 제주항공이 추가로 요청한 미지급금 해소는 SPA 의무가 아니라며 “그런데도 이스타항공은 미지급금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제주항공이 이날 오전 “전날 이스타홀딩스로부터 계약 이행과 관련된 공문을 받았으나 선행조건 완결 요청에 대해 사실상 진전된 사항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한 반박이다. 제주항공은 “(마감 시한인) 15일 밤 12시까지 이스타홀딩스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계약 파기를 위한 명분을 갖춘 셈이다.
다만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M&A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라고 여지를 뒀다. 계약 해제에 대한 최종 결정과 통보 시점을 정부의 중재 노력이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해서 추후 정할 것이라고 제주항공은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선행조건 이행 시한이 지났다고 당장 계약을 파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달 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차례로 만나 대승적 합의를 하라고 압박하는 등 제주항공 입장에서도 마냥 M&A를 무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M&A 불발 시 제주항공이 떠안게 될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스타항공은 파산수순을 밟게 되고 임직원 1500여 명이 실직 상태로 내몰리게 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서다. 실사 과정에서 정보만 빼오기 위해 참여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이스타항공 인수 결정에 앞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고배를 마신 제주항공은 당시 아시아나항공 실사를 진행하며 내부 정보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에 대해서도 실사만 하고 최종 인수를 포기하면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때문에 제주항공의 행보에 대해 정부의 추가 지원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M&A 전문가는 “예상치 못한 손실이 있었더라도 미지급금 규모만큼 가격을 깎아서 인수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며 “결국은 정부 추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계약 파기 요건을 하나둘 갖추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내부에서도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고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거래 당사자의 명확한 의사표시 없이 시장 주도의 항공사 M&A에 먼저 나서서 지원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3일 M&A 당사자들을 만나 중재를 했으니 항공사가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놔야만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3월 M&A 성사 시 1700억원의 실탄을 공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제주항공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업 간 M&A에 국민 세금으로 정부가 먼저 단순히 지원 금액을 거론할 수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M&A 특성상 거래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도 없다”며 “거래 당사자가 먼저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으면 관계부처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