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명성황후가 산후조리를 위해 먹은 음식은?

명성황후가 산후조리를 위해 먹은 음식은?

기사승인 2020. 08. 12. 15:19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서울시, '서울 사람들의 생로병사' 발간
clip20200812110051
12일 서울역사편찬원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생로병사에 대해 집필한 ‘서울 사람들의 생로병사’ 총 10권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추사 김정희가 쓴 약방문. /제공=서울시, 한독의약박물관
#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뒤 기록문으로 알려진 ‘갑술이월삼칠일갱반소용’에는 삼칠일동안 왕실 여성들이 먹었던 산후조리 음식이 적혀있다. 당시 황후는 말린 고등어인 강고도리(건고도어, 乾古刀魚)로 국물을 우린 뒤 새우나 홍합을 넣은 미역국인 ‘화반곽탕’을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 서울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12일 서울역사편찬원은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생로병사에 대해 집필한 ‘서울 사람들의 생로병사’ 총 10권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먼저 ‘생(生)’에서는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의 출산과 육아, 장애 등이 담겼다. 조선시대에는 초산 연령이 낮고, 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에 출산 후 몸을 회복하기 위한 산후조리가 중요했다.

물론 출산 이후 아이를 기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마마(천연두)와 같은 질병으로부터 장성하기까지 온전히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온 집안이 애썼다. 유만주가 쓴 ‘흠영’과 이문건의 ‘묵재일기’에는 유모 고르기에 고민하고, 손자를 위해 질병을 공부하는 조부모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노(老)’에서는 한양시대 사대부의 노년을 살펴본다. 은퇴한 사대부들은 스스로를 돌보고 늙음을 받아들여 훌륭한 노인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이를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퇴직관료들의 모임도 있었다. ‘선조조기영회도’에는 원로를 우대하기 위한 관청인 기로소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추사 김정희 약방문에는 소화불량을 해소하기 위해 삼별건비탕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허준이 쓴 ‘동의보감’의 삼출건비탕을 변형한 것으로, 의료가 발달하기 전 치료를 위해 의학적 소양을 갖췄던 사대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특히 ‘병(病)’에서는 서울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을 다뤘다. 사람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던 것은 홍역과 괴질로 불린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호랑이가 물어뜯는 고통을 준다해 ‘호열자(虎列刺)’로도 불렸다.

‘사(死)’에서는 죽음 이후에 대해 나온다. 조선시대 한양에서는 사대문 안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광희문이나 서소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내보냈다.

공동묘지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나타났다.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이 인정한 공동묘지 이외에는 사유지라도 묘지를 설치할 수 없게 하고, 화장을 합법화했다.

이번 책은 서울책방 및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서울시 각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