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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11월 22일: 소설, 첫눈이 내림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11월 22일: 소설, 첫눈이 내림

기사승인 2020. 11. 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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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적은 양의 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minor snow)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중부 지방에서는 흔히 입동 끝 무렵이나 소설 어간에 첫눈이 내린다. 그리고 첫눈은 대체로 그 양이 적어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온난화 현상으로 첫눈이 자꾸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소설이라고 해서 반드시 첫눈이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어간에 첫눈이 조금이나마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소설 무렵부터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고 추위가 매서워져 겨울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만간 첫눈도 오게 된다. 눈은, 서설(瑞雪)이라는 말이 있듯이, 상서로운 것으로 말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비를 반기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눈을, 특히 첫눈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게다가 눈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내고, 감상에 젖게 하는 매우 신비하고 정서적인 사물이기도 하다. 김광균 시인의 표현을 빌면, ‘머언 곳에 여인이 옷 벗는 소리’로 내리는 눈은 ‘잃어진 추억의 조각’인 것이다.

이처럼 눈만큼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물상도 흔치 않다. 첫눈은 특히 더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이 오는 것을 반기고 소설 절기가 되면 은근히 진눈깨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첫눈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요즈음은 눈이 잘 오지 않는 것도 아쉬운 일이지만, 각박한 세상이 되어 버려 눈이 와도 도무지 옛날처럼 추억에 잠기거나 설레는 마음을 갖기 어려운 세태가 더 아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 절기에세이 앙카라 공원
첫 눈이 내린다는 소설을 앞둔 19일 서울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 흩어진 낙엽들이 가을비에 젖어 있다. / 이효성 주필
이 무렵 가끔 강한 북풍이 휘몰아쳐 헐벗은 나무를 흔들어 얼마 남지 않은 가랑잎들마저 떨어뜨리고 땅에 쌓인 낙엽들을 이리저리 휩쓸어가 스산한 늦가을과 초겨울의 정경을 연출한다. 이 무렵의 전형적인 풍광은 찬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이다. 영국 시인 셸리(P. B. Shelley)의 ‘오 거센 서풍, 너 가을의 숨결이여, 너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죽은 잎사귀들은, 마치 마법사에게서 도망치는 유령들처럼 쫓겨 다니누나’라는 <서풍부>의 첫 연(聯)은 이때의 풍광에 가장 어울리는 묘사일 것이다. 이때쯤이면 낙엽이 잘 지지 않는 양버즘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철쭉, 낙엽송 등 몇몇 나무의 잎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활엽수가 나뭇잎들을 거의 다 떨군 채로 앙상하게 서 있다.

소설부터 가장 전형적인 겨울의 물상인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고, 강하고 매서운 삭풍이 불면서 날씨가 차가워지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엔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변한다’거나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이 어간에 먹을거리와 땔감을 준비하고, 외풍을 막고, 온돌을 따뜻하게 손보고, 솜옷을 짓는 등 월동 준비가 겨울을 앞둔 모든 집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택과 난방 시설과 의류 제품이 발달하여 월동 준비라고 할 것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렵 월동 준비만 제대로 마친다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별로 할 일이 없게 된다. 이 무렵은 음력으로 시월 중하순이다. 말하자면, 과거에 음력 시월은, 특히 소설 무렵은, 농사를 마무리하는 달로서 추수와 월동 준비를 다 마치는 때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큰 걱정 없이 겨울을 맞을 수 있고 특별히 할 일도 없어 한가하게 놀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에는 음력 시월을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 가장 좋은 달이라 하여 ‘상달’이라고도 했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 있는 공짜 달이라 하여 ‘공달’이라고도 했다.

소설 무렵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곶감이라는 말린 과일을 만드는 때다. 곶감은 과거 설탕이 없던 시절 한 겨울에 당분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먹을거리였다. 곶감으로 유명한 곳은 대체로 지리산 자락의 상주, 산청, 함안, 영동 등인데 늦가을에 이곳에 가면 덕장에 걸린 주황색의 감 타래들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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