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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는 코로나19, 나도 할 말은 있다

[칼럼] 나는 코로나19, 나도 할 말은 있다

기사승인 2020. 11. 29.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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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욱 사진
양창욱 사회부장
나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19)다. 지금은 고매한 인류를 위협하는 대재앙으로 결코 용서받지 못할 저주와 악령의 또 다른 이름이 됐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세상 모든 바이러스를 품을 듯이 독특한 면역체계를 가진 박쥐의 품속은 더 할 나위 없이 안락했고, 그 속에서 서식하던 나의 모체의 삶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기껏 유전자와 단백질로 이뤄진 작은 몸으로 숙주에 의지해 근근이 살아간다는 열패감과 자괴감은 있었지만 탄소와 산소를 공급하며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그런 모체의 언덕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나를 애써 깨우고 기어이 사람 몸속으로 내 삶의 터전을 옮기게 만든 것은 놀랍게도 당신들, 인류였다.

나의 모체인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물과 사람 모두를 감염시킨다. 특히 사람에게 전파가 가능한 것은 사스(SARS)와 메르스(MERS)를 포함해 6종으로 알려져 있다. 사스는 박쥐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를 매개로, 메르스는 박쥐 바이러스가 낙타를 매개로 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나 역시 사실상의 자연숙주였던 박쥐로부터 유래됐고 중간매개동물로 뱀 혹은 밍크 같은 포유동물들이 집중 거론되고 있다. 여하튼 나는 사스유사 박쥐 바이러스와 90% 가까운 유전자 일치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분명 이번에 처음 발견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다.

나의 고향과 발원지를 놓고 인류의 호사가들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야생동굴에서 켜켜이 기거하던 최초의 숙주, 중국관박쥐가 어떻게 불행의 씨앗이 된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화난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흘러갔는지 가멸찬 박쥐의 이력을 아무리 살펴봐도 궁금증만 더해간다. 양자강의 호위를 받으며 내달린 험준한 준령, 그 어느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쓸쓸하게 포획당한 것인지, 아니면 예부터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던 우한답게 번다한 사람들이 차고 넘쳐 이들의 호승심에 기습적으로 보금자리가 파괴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중국의 재래시장은 인간이 오직 돈벌이를 위해 각지에서 무자비하게 잡아온 수많은 야생동물들을 비위생적으로 도축해 팔거나 거래하는 곳이다. 이 바이러스의 저수지 같은 곳에서 나는 너무도 쉽고 또 당연하게 다양한 바이러스들과 뒤섞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 것이다.

나로 인해 인류는 말 그대로 문명의 대전환의 길에 들어섰다. 나와 고통스럽게 공존하던 시간들을 서서히 극복하고 오롯이 비대면과 비접촉으로 모든 생활양식과 문화를 구현해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류가 견인해나갈 미래의 담론과는 상관없이 나는 조만간 인류에게 정복돼 종식될 것이다. 나의 친구 사스와 메르스는 워낙 변종이나 돌연변이가 많고 돈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약사들의 장삿속에 백신 없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마치 죽을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 역병(疫病)이라던 옛 사람들의 잠언처럼. 그러나 나는 나의 친구들 보다 치사율이 낮음에도 가공할 전파력으로 발병 1년 만에 세계 인구의 10%를 감염자로 만들었고, 13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앞 다투어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오고 있는 세월은 결코 나의 편이 아닌 것이다.

지구상에 약 160만 개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인간은 이 가운데 단 1%만을 찾아냈다. 나머지 99%의 거의 대부분은 인간의 삶과는 관계없이 저마다의 자연숙주에서 경이롭고 찬란하게 공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우리의 평온한 생태계를 먼저 침탈하고 훼손하는 것은 언제나 분별없는 이기심과 과욕으로 점철된 인간들이었다. 곧 나의 날은 다하겠지만 상생의 진리를 외면하고 유린하는 인류가 있는 한, 호시탐탐 종간 장벽을 넘어 숙주 영역을 확장하고픈 나의 후손들이 지구촌 어디에서든 정말 조금의 틈만 보여도 ‘신종’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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