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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왕 야마니 영면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석유왕 야마니 영면

기사승인 2021. 02. 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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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장관. 사진=AP연합뉴스
1973년 세계 경제를 대혼란에 빠뜨린 오일파동의 주역이었던 ‘중동 석유왕’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가 영면에 들어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출범부터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도록 한 일등공신인 그는 세계 석유역사의 큰 줄기를 바꾸어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23일(현지시간) CNN비즈니스는 야마니가 거주 중이던 영국 런던에서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은 가운데 그의 시신은 이슬람교 성지 메카에 묻힐 예정이다.

하버드법대를 나와 변호사를 하던 야마니는 1962년 사우디 석유장관에 올랐다. 사우디에서 왕족이 아닌 사람이 이런 자리에 오른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는 1986년 영구적인 생산쿼터를 마련하라는 파드 국왕에 반대하다 해임될 때까지 약 25년간 석유를 무기로 사우디를 비롯한 지금의 중동국가들이 막대한 부를 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야마니는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석유 카르텔’ OPEC 결성을 주도해 그전까지 서구 국가들이 지배해온 석유 가격을 생산 국가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석유 금수조치를 그가 주도했다. OPEC의 아랍 회원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다른 서방 선진국들에 대한 처벌의 의미로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 이른바 1차 석유파동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원유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네 배나 올랐다. 미국에서는 휘발유배급제가 도입됐고 전국 도로에는 55마일(88.5km) 제한속도가 걸렸다. 1970년대 한창 기지개를 켜던 한국경제도 직격탄을 맞았다. 1973년 석유파동은 대다수 택시가 액화석유가스(LPG)차량으로 개조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야마니는 2010년 CNN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원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OPEC 회원국들은 횡재를 누렸다. 2021년 시장 전망치는 30%로 쪼그라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전 세계 생산량의 약 80%를 OPEC이 장악하고 있었다.

석유파동을 이끌고 1975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그 시대의 악명 높던 국제 테러리스트인 ‘카를로스 더 자칼’이 이끄는 단체에 인질로 잡히는 일을 겪었다. 카를로스는 석유로 장난을 치는 야마니 석유장관과 잠시드 아무제가르 이란 석유장관 등을 모두 살해할 계획이었으나 알제리의 중재 끝에 석방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유명 종교학자의 아들답게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는 석유와 관련된 명언을 남긴다. 야마니는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석유가 부족해서가 아닌 이유로 석유시대도 끝날 것“이라고 했다. 한때 세계 석유계를 쥐락펴락했던 막후 실력자가 아니러니하게 석유시대의 종말을 예언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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