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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경복궁 교태전과 인재 탄생의 비밀

[기고]경복궁 교태전과 인재 탄생의 비밀

기사승인 2021. 08. 2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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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해 한양대 동양문화학과 교수
박정해 한양대 동양문화학과 교수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뀌면 국호를 고치고 도읍을 옮기는 것이 동양사회의 전통적 관례였다. 관례에 따라 조선왕조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게 된다. 이때 풍수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우리 조상께서는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는 데에 지리를 살펴서 정하시고, 시민들의 부모 장사하는 데에도 반드시 산수의 지형을 보게 하였으니, 지리가 세상에 유행되는 것은 이제부터가 아니고 예전부터였다. 지리를 쓰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일 그것을 쓴다면 정밀히 하여야 한다”는 세종대왕의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입지선정에 있어 풍수는 중요하게 활용됐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혈처를 찾고 핵심적인 건축물을 입지시켰다. 경복궁의 경우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이때 현실정치에 보다 비중을 둘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탄생에 비중을 둘 것인지 선택을 필요로 한다. 둘다 중요한 요소이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현실정치에 보다 비중을 둔다면 왕이 정사를 논하는 건축물을 혈처에 입지시켜야 한다. 반면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에 방점을 둔다면, 잉태와 출산이 이뤄지는 건축물이 혈처에 자리해야 한다. 따라서 경복궁 입지와 공간구성에 있어서 현실정치에 바탕을 뒀는지, 아니면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에 충실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의미있는 과정이다.

왕이 정사를 논하는 치조공간은 크게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중요한 국가 행사를 비롯한 의례를 치르는 근정전과 평상시에 업무를 수행하는 사정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반면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활용하는 내조의 공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임금의 숙소인 강녕전과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왕자를 잉태하고 출산을 맡아 줄 왕비의 숙소인 교태전은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혈처에 자리한 건축물을 찾기 위해서는 기의 전달 통로인 입수룡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곳을 찾아야 한다. 혈처는 주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용맥이 물을 만나 더 이상 행룡하지 못하고 엎드려 기를 응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정전과 사정전, 강녕전은 평지에 입지하고 있어 입수룡과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 반면 교태전은 아미산에 이르러 입수룡이 행룡을 멈추게 되는데, 이를 확인시켜주는 것이 경복궁도이다. 경복궁도에 따르면 향원지 우측으로 흘러내린 용맥은 교태전에 이르러 행룡을 멈추고 있다. 즉 ‘천지교태’의 뜻을 품은 교태전이 혈처에 해당한다. 이것은 향후 조선왕조를 이끌어갈 인재 탄생에 보다 큰 비중을 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경복궁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복궁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복궁도에 따르면 여러 개의 용맥이 제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신무문 좌측 용맥이 경회루 뒤편 물길에 의해 더 이상의 행룡을 멈추고 이곳에 또 다른 혈을 맺는다. 현재는 공터로 남아 있으나 후궁들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당시 경복궁을 건설하고 입지를 선정한 그들의 사고 속에는 왕실의 앞날을 이끌어갈 인재 탄생을 중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단행본으로 출간된 서적에는 근정전이 혈처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근정전은 혈처에 해당하지 않는다. 근정전을 혈처라 인식한 배경에는 품계석이 늘어선 곳을 명당이라 부르는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당은 임금이 조회를 받는 정전을 말하는 것으로 풍수 혈처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세유표’에서 “법전이 복판에 있는데 옛날 명당구궁이라는 것이 곧 이 제도”라는 논리에 따라 배치된 건축물로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다가, 세자 책봉식과 문무관 조례, 중국사신 접견과 같은 중요한 의례만이 이뤄지는 곳이다. 굳이 혈처에 배치할 필요성이 없고, 또한 길지가 가지는 기운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풍수 혈처가 가지는 길지의 기운을 바탕으로 현실 속에 실천할 요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돼 의례만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교태전은 차세대를 이끌어갈 큰 인물을 잉태하는 곳으로, 인간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에 해당한다. ‘국어’ ‘월어’에는 “인사는 반드시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뒤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길지의 기운에 해당한 지기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유리한 날짜와 시간에 해당하는 천기, 그리고 인간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 인기가 조화가 이뤄야 한다. 새로운 인재 탄생은 천기와 지기, 인기가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의 반영이다. 사람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니만치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야 가능한 것이다.


경복궁도 서울민속박물관 소장
경복궁도. 서울민속박물관 소장.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에 의해 이뤄진단 믿음은, 미래를 이끌어갈 보다 똑똑한 인물의 탄생을 기원하기 마련이다. 어느 사회나 국가 모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명제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편으로 우리 조상들은 풍수 명당의 힘을 빌리고자 했고, 교태전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박정해 한양대학교 동양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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